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영하 196도 액체질소로 급속 냉동… 150명 동면 중

입력 : 2023.08.15 03:30

냉동 인간

/그래픽=유재일
/그래픽=유재일
폭염을 알리는 재난 문자가 연일 휴대전화를 울리는 무더운 여름입니다. 지구온난화로 세계 각지의 생태계가 변하고 있어요. 남극도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아 얼음 대신 풀이 무성한 모습으로 바뀌고 있죠. 영구동토층도 녹고 있어요. 영구동토층은 1년 내내 얼어 있는 땅을 말해요. 두께가 약 80~ 100m 정도로, 수천 년에서 수만 년 동안 꽁꽁 얼어 있는 땅입니다. 그 안에는 얼음이 얼 당시 식물과 미생물은 물론, 석탄과 가스 등이 묻혀 있어요.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그 안에 있던 식물과 미생물, 가스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요. 최근에는 영구동토층에 갇혀 있던 벌레가 완전히 깨어나고 번식해 과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영구동토층 속 기생충, 4만년 만에 깨어나

지난달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유전학연구소 게이드 박사가 이끈 공동 연구팀은 영구동토층에 갇혀 있던 벌레를 부활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어요. '파나그로라이무스 콜리맨시스(Panagrolaimus kolymaensis)'라는 이름의 이 벌레는 1㎜ 미만 아주 작은 크기로, 시베리아 영구동토층 표면 아래 40m 지점에서 발견됐어요.

연구진은 이 벌레가 어떤 종인지 알아보기 위해 유전자 분석을 했어요. 그 결과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종의 선충류라는 사실을 확인했어요. 선충류는 기생충의 일종이에요. 연구진은 이 종이 과거 존재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멸종했을 것이라고 봤어요. 이 벌레가 있었던 흙을 분석해 보니, 약 4만6000년 전 흙으로 나타났어요. 이 벌레는 4만6000년 동안 얼음에 갇혔던 거예요.

연구진은 파나그로라이무스 콜리맨시스를 실험실 접시에 넣고 먹이가 될 만한 박테리아를 함께 담아줬습니다. 그러자 벌레가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 신체 활동을 다시 시작했고, 심지어 일부는 번식도 했습니다. 오래전 얼음에 갇히면서 죽은 게 아니라, 4만년 넘는 긴 시간 동안 깊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난 거죠.

과학자들은 지구에 존재하는 미생물 일부가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체 활동을 잠시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크립토바이오시스'라 부르는 이 현상은 마치 잠을 자는 것과 같아 '휴면 상태'라고 해요. 몸의 활동을 매우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깊은 잠에 빠지는 거예요. 실제로 이 벌레를 분석해 보니 크립토바이오시스와 관련 있는 유전자를 갖고 있었습니다.

연구진이 이 벌레를 매우 건조한 환경에 노출했더니 크립토바이오시스에 대비해 몸에서 당(糖)을 만들었어요. 당은 DNA와 세포, 단백질 등이 외부 환경 변화로 분해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했죠. 이 벌레는 이러한 방식으로 영하 80도 환경에서 최대 480일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냉동 인간, 영하 캡슐에서 잠들다

이번 연구는 4만년 넘는 시간 동안 낮은 온도의 극한 환경에서 신진대사를 멈추고 휴면 생활을 할 수 있는 생명체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파나그로라이무스 콜리맨시스의 비밀을 풀면 그동안 많은 사람이 꿈꿔온 냉동 인간 기술이 현실화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답니다.

냉동 인간은 인간 몸의 생체 시간을 잠시 멈추고, 세포가 노화하지 않도록 보존하는 기술을 말해요. 미국 물리학자 로버트 에팅거의 아이디어로, 더 오래 살고 싶다는 사람들의 염원에서 시작됐죠. 냉동 인간이 돼 잠들었다가 과학이 발전한 미래에 깨어나면 지금은 고치지 못하는 난치병을 고칠 수 있고, 병으로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겁니다.

실제로 해외에는 '냉동 보존'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있어요. '잠들어 있는' 냉동 환자가 150명이 넘고, 1000명 넘게 회원으로 등록돼 있답니다.

냉동 보존 서비스는 냉동 인간이 되길 원하는 환자가 사망하는 순간 시작합니다. 몸이 부패하는 것을 막고자 우선 시신을 곧바로 얼음 통에 넣어요. 냉동됐다가 깨어날 때 가장 중요한 기관은 뇌예요. 기술자들은 뇌가 손상되지 않도록 심폐 소생 장치로 몸 전체에 혈액이 계속 순환하도록 합니다.

이후 시신을 회사 본사로 옮긴 뒤 알루미늄 관에 넣습니다. 30분 안에 체온을 3도까지 내리고, 몸의 혈액을 다 뽑아낸 후 피가 빠져나간 빈 자리에 세포 부패를 막는 동결 방지제를 채워 넣지요. 이후 영하 196도 액체질소 캡슐에 시신을 급속 냉동해 보관합니다. 그렇게 냉동 인간은 캡슐에서 미래 어느 날 해동되기를 기다리는 거예요.

아직 냉동한 시신을 해동한 적은 없어요. 손상 없이 해동하는 기술은 매우 까다로운 과정으로, 아직 개발 단계지요. 그동안 정자나 난자, 피부 세포, 세균 등 단일 세포를 얼렸다가 활성화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사람 몸 전체를 해동한 사례는 아직 없어요. 장기 세포 안까지 열을 균일하게 전달할 수 있는 급속 해동이 가능해져야 손상을 최소화하고 성공적인 부활을 시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어요.

우주여행 때 체력과 비용 아낄 수 있어

냉동 인간 보존 기술은 우주여행에 활용할 수 있어요. 과학자들은 지구 밖 새로운 행성으로 떠나는 우주여행을 꿈꾸고 있어요. 문제는 비행시간입니다. 화성까지 가는 데만 6개월이 걸리고, 그보다 멀리 있는 행성까지 가려면 더 오랜 시간 비행해야 합니다. 이 기간에 필요한 음식을 챙겨야 하고 호흡과 배변을 위해 우주선에 담을 짐도 많아져요. 또 긴 시간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하니 우주인이 스트레스를 받기도 쉬워요.

만약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동면하면 필요한 에너지를 줄여 체력과 짐, 비용을 한꺼번에 아낄 수 있어요. 이를 '인공 동면'이라고 해요. 인공 동면은 체온을 내려 몸의 활동을 최소로 했다가 원하는 시간에 깨어나는 걸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냉동 인간과 비슷해요. 실제로 미 항공우주국(NASA)은 인공 동면 기술 '콜드 슬립'을 연구하고 있으며, 2030년쯤 화성에 우주인을 보내는 유인 탐사에 이 기술을 활용할 계획이랍니다.
이윤선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김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