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작곡… 지휘·연주도 한 '만능 음악가'
입력 : 2023.08.14 03:30
레너드 번스타인
- ▲ 지난 11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2023 클래식 레볼루션’ 서울시향 연주 무대. /롯데콘서트홀 인스타그램
미국 출신 레너드 번스타인은 이른바 '멀티 뮤지션'의 대표 인물입니다. 유명 지휘자로 이름을 날린 것은 물론 방송 해설자, 피아니스트로 활동했고 작곡가로도 명성이 높았죠. 그가 남긴 작품에는 클래식과 재즈의 자유로운 결합, 거기에 유대인으로서 어렸을 때부터 익숙했던 민속 선율과 문학성이 가미돼 독창적인 분위기가 있습니다. 축제 기간 연주되는 작품들을 알아보겠습니다.
모험과 사랑을 다룬 작품
첫날인 11일 서울시향이 연주한 번스타인의 오페레타 '캔디드' 서곡은 그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 중 하나입니다. '캔디드'는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이자 작가 볼테르가 1759년 쓴 중편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릴리언 헬먼의 대본으로 1956년 12월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어요.
줄거리는 독일 귀족 사생아인 순수 청년 캔디드가 사랑하는 여인 퀘네공드와 함께 유럽과 남미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겪는 신기한 경험과 아슬아슬한 모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1974년 대규모 개작(改作)이 이뤄졌고, 1989년 번스타인 사망 직전 최후의 버전이 만들어졌죠. 줄거리에 담긴 복잡한 풍자와 상징적인 내용 때문에 작품의 평가는 종종 엇갈리지만, 첫머리에 연주되는 서곡은 늘 인기가 높습니다. 약 5분간의 짧은 곡이지만 작품의 흥겨운 성격을 요약한 악상으로 미국인들의 즐겁고 낙천적인 정서를 그렸어요.
12일 성남시향(바이올린 협연 에스더 유)이 연주한 '바이올린, 현악 오케스트라, 하프, 타악기를 위한 세레나데'는 번스타인의 작품 중에서도 부드럽고 서정적인 매력이 있는 바이올린 협주곡입니다. 1954년 8월 완성돼 같은 해 9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아이작 스턴의 바이올린과 작곡가 본인의 지휘로 초연된 이 작품에는 '플라톤의 심포지엄에 의한'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어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 연설 모음집 '심포지엄'에서 부제를 땄습니다. 심포지엄에 등장하는 연설자 7명이 사랑의 신 에로스를 찬양한 내용을 번스타인이 참고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직접적인 연관은 느껴지지 않지만 사랑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생각을 음악으로 다양하게 펼쳐 놓은 것처럼 들립니다.
모두 다섯 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에서 등장하는 연설자들은 파이드로스·파우사니아스(1악장), 아리스토파네스(2악장), 에릭시마코스(3악장), 아가톤(4악장), 소크라테스·알키비아데스(5악장) 등입니다. 작품은 진지하고 서정적인 흐름으로,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풍자와 심각한 분위기로 흘러가기도 하며, 마지막은 신나는 춤곡 리듬으로 등장인물들의 흥겨운 기분을 표현합니다.
'불안의 시대'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수원시향과 피아니스트 신창용의 연주로 18일 감상할 수 있는 번스타인의 작품은 교향곡 2번 '불안의 시대'입니다. 1949년 3월 완성된 이 작품은 보통 교향곡과 달리 피아노가 전면에 나서 활약하는 피아노 협주곡 형태예요. 번스타인은 1948년 퓰리처상을 받은 위스턴 휴 오든의 장시(長詩) '불안의 시대'를 읽고 강한 영감을 받아 작품 소재로 사용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뉴욕 한 술집에서 만난 세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이 나누는 대화와 그들의 행동이 주 내용입니다. 네 사람은 삶과 희망, 죽음에 대한 공포와 인간의 정체성 등에 대해 잡담을 나누다 여성의 집으로 가 파티를 벌입니다.
번스타인은 작품에서 피아노를 시인(화자)으로 설정했어요. 교향곡은 모두 여섯 파트로 나뉩니다. 서곡 역할을 하는 프롤로그, 유년 시대부터 죽음에 이르는 단계를 설명하는 '일곱 개의 시대', 인물들이 상상 속 이상향을 찾는 '일곱 개의 무대' '장송곡' '가면무도회' '에필로그' 등으로 구성되죠. 배경의 극적인 전환을 담당하는 오케스트라와 화려한 기교를 선보이는 피아노 간 대화가 무척 인상적이며, 특히 '가면무도회' 부분은 빠른 재즈풍 악상으로 전 곡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마지막 날인 20일 경기 필하모닉이 연주할 '심포닉 댄스'는 번스타인의 대표작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나오는 중요한 노래와 춤곡을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한 작품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힌트를 얻어 뉴욕에 살고 있는 이민자들 사이의 갈등과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이 뮤지컬은 1957년 발표 이후 지금까지 그 인기가 식지 않고 있는 스테디셀러죠. 모두 아홉 곡으로 구성된 심포닉 댄스는 극의 줄거리와 상관없이 주요 악상을 자유롭게 섞어 진행하는데, '투나이트' '마리아' '아이 필 프리티' 등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하면 떠오르는 명곡을 세련된 오케스트라 연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작품은 다채로웠던 그의 음악 인생만큼이나 변화무쌍하고 흥미로운 구석이 많습니다. 올해 말 미국 배우 브래들리 쿠퍼가 감독과 주연을 맡아 번스타인의 생애를 다룬 영화도 개봉합니다. 세상을 떠난 지 33년이 지난 이 위대한 음악가와 더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이어질 듯하네요.
- ▲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2023 클래식 레볼루션’ 성남시향 연주 무대. /롯데콘서트홀 인스타그램
- ▲ 1985년 네덜란드 왕립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레너드 번스타인. /위키피디아
- ▲ 안드레아스 오텐잠머 ‘2023 클래식 레볼루션’ 예술 감독.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