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하이든과 굴 중 어떤 삶이 더 행복할까' 일상 속에서 질문 던지며 철학 익혀요
입력 : 2023.08.10 03:30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엠피리쿠스는 고대 그리스 의사이자 철학자입니다. 그는 세상에 절대적으로 확실한 진리는 없다고 말했어요. 저자는 이 철학자의 주장을 이렇게 설명해요. 지구상 다양한 생물들은 세상을 서로 다르게 지각(知覺)하지요. 예를 들어 개와 인간은 사과를 각자 다른 색깔로 봐요. 그렇다면 사과가 빨갛다는 것은 인간에게만 유효한 지식일 뿐 절대적인 지식이라고 할 수 없지요.
사람마다 판단하는 바도 다릅니다. 같은 연필을 보고도 누구는 길다고 하지만 다른 이는 짧다고 판단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이 연필이 긴지 짧은지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있다고 할 수 없겠지요. 한 사람의 판단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잠들었을 때, 병에 걸렸을 때, 술에 취했을 때, 맑은 정신일 때…. 인간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똑같은 것을 보고도 전혀 다르게 느끼고 판단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그중 무엇이 정말 옳은 것인지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요? 나아가 집단마다 문화와 관습, 법 체계와 종교 등이 서로 다르고, 그에 따른 판단 기준도 각기 달라요. 그중 어떤 기준을 선택해야 옳을까요? 저자는 엠피리쿠스라는 철학자가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고 말했던 생각의 배경을 알기 쉽게 설명해줘요.
저자는 본명인 이충녕보다 '충코'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철학 콘텐츠 크리에이터예요.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 수 10만이 넘을 정도로 인기죠. 저자는 세상에 의문을 던지는 53가지 철학 이야기로 철학자들의 머릿속을 파헤쳐 들어가요.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상황을 철학적 사유까지 연결하죠.
철학이라는 학문은 접근하기 어려운 학문이긴 하지만, '교양인으로서 갖춰야 할 정도의, 혹은 자신의 삶을 조금 더 풍성하게 하는 정도의 철학적 지식은 누구나 습득할 수 있다'면서, 저자는 용기를 줍니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하기는 어렵지만, 식당에서 주문할 정도로는 익힐 수 있지 않느냐는 거죠. 교양 차원의 철학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며, 재미있는 요소가 많다는 것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보여줘요. 수학은 어렵지만 수학적 사고는 논리적 판단을 하는 데 기초가 되는 것처럼,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교양인으로서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죠.
'하이든과 굴 중에 어떤 삶이 더 행복할까?' '인공지능은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환경보호 활동가가 매연을 배출하면 비난받아야 할까?'책장을 쉽게 덮을 수가 없어요. 대답이 너무나 궁금해지기 때문이죠. 그런데 저자의 이야기를 정신없이 좇아가다 보면, 정답이나 해답이 아니라 또 다른 질문을 잔뜩 안게 됩니다. 이것은 철학적 사유에 빠져든 자신이 만든 질문이에요. 그러니까 이 책은 대답보다는 질문을 만드는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김성신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