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로마 전역에 500곳… 황제부터 노예까지 공짜로 즐겼대요

입력 : 2023.08.09 03:30

로마의 극장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원형경기장 콜로세움 내부 모습. 콜로세움에서는 검투사 경기, 맹수 사냥 행사 등이 열렸어요. /위키피디아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원형경기장 콜로세움 내부 모습. 콜로세움에서는 검투사 경기, 맹수 사냥 행사 등이 열렸어요. /위키피디아
고대 문헌에 기록이 있지만 그동안 흔적을 찾을 수 없었던 로마 네로 황제의 극장이 최근 이탈리아 로마 한 호텔 부지 밑에서 발견됐어요. 1세기 때 로마 저술가 겸 철학자 가이우스 플리니우스의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네로 황제의 극장이 테베레 강변에 실제 존재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유적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어요.

우리는 흔히 '빵과 서커스'를 포퓰리즘 정책을 지칭하는 말로 쓰곤 해요. 고대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가 쓴 표현으로, 권력자로부터 무상으로 주어지는 음식과 오락거리를 즐기며 물질적 이득과 쾌락만 추구하게 된 로마 시민 사회를 풍자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우민(愚民) 정책으로만 보지 않고, 평민들의 정치적 입지가 더 높아졌다는 방증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번에 발견된 고대 로마 극장 또한 '서커스' 정책을 보여주는 하나의 유적이에요. 고대 로마에서 극장은 어떠한 모습이었고 어떠한 목적으로 이용됐는지 알아볼까요?

종교적 목적에서 시작한 로마 연극

로마 극장을 알려면 우선 로마 연극을 알아야 해요. 로마 연극은 신들을 기쁘게 할 목적으로 가면 음악극을 공연하고 축제일에 신들의 상(像)을 들고 행진한 것에서 비롯됐어요. 그러다 점차 제사나 권력자의 장례식을 마친 후 열리는 행사가 됐습니다. 공화정 시대 수도 로마에서는 연간 25~30회 정도 연극이 상연됐다고 해요. 물론 극단이 수도에만 있지 않고 지방 순회공연을 다녔기 때문에 횟수는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해요. 제정 로마 시대에는 황제들이 연극을 좋아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도 했기 때문에 상연 횟수가 더 늘어났을 것으로 보여요.

처음 연극은 광장이나 시장 같은 개방된 공간에서 했고, 관객들은 이를 서서 봤어요. 기원전 2세기쯤부터 연극은 종교의식과 관계없는 문화 행사로 발전했고, 관중도 편하게 앉아서 연극을 보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로마의 보수적인 정치인들은 연극 같은 공연이 시민들의 도덕성을 저해한다고 생각해 상설 극장을 짓는 것을 금지했어요. 대신 공연 후 쉽게 철거할 수 있는 목조 극장만 허가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상설 석조 극장이 늘어났고 원형경기장도 지어졌죠. 이런 경기장에서는 군대를 동원한 전투 장면을 연출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규모 공연도 가능했어요.

로마 극장에도 오늘날 극장처럼 무대와 객석이 있었어요. 좌석은 계단식으로 만들어 소리가 극장 전체에 퍼져 나갈 수 있었고, 가장 멀리 있는 사람도 잘 볼 수 있도록 배우들은 큰 탈을 쓰고 동작을 과장해 연기했습니다. 로마 전역에 극장이 약 500여 곳 있었고 지방 소도시에도 극장이 있었대요. 극장 하나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도 많아서 최대 2만명인 곳도 있었다고 합니다.

통치자의 업적이 된 극장 건설

최초의 상설 극장은 로마 장군이자 정치가 폼페이우스가 세웠어요. 그는 집정관을 맡은 기원전 61년 착공해 기원전 55년 극장을 완성했습니다. 폼페이우스는 그리스 레스보스섬을 방문했을 때 그 지역 극장에서 노래 짓기 대회가 열리는 것을 보고, 로마에 이와 유사하지만 더욱 장엄한 극장을 만들기로 결심했대요. 실제로 많은 돈을 투입해 약 1만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극장을 지었죠. 연극 외에 체육과 음악 행사, 맹수 사냥 등도 열렸다고 해요. 하지만 현재는 그 모습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나마 당시 모습을 일부 간직하고 있는 극장이 있는데, 바로 마르켈루스 극장이에요. 공화정 시대 목조 가설 극장이 있던 자리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수용 인원 약 1만5000명 규모의 석조 반원형 극장을 짓기 시작했어요. 이 극장은 카이사르의 양자 아우구스투스가 완성했고, 그는 누이 옥타비아의 아들이자 자신의 후계자 마르켈루스가 요절하자 그를 위해 이 극장을 바쳤습니다. 남아 있는 외부 모습이 콜로세움과 매우 비슷해, 마르켈루스 극장이 콜로세움에 건축학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어요.

그렇다면 극장은 어떤 목적으로 운영됐을까요? 우선 극장뿐 아니라 대부분 건축 사업은 통치자의 업적을 과시할 좋은 수단이었어요. 여기에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효과도 있었죠. 극장 완공 이후 통치자가 베푸는 공연은 그의 미덕과 제국의 부(富)를 드러내는 정치적 행사였습니다.

물론 극장 객석에는 신분과 성별에 따른 서열이 있었지만, 황제부터 노예까지 모든 계층이 무료로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어요. 이를 통해 황제는 자신의 자비로움과 백성에 대한 애정을 나타낼 수 있었고 평민과 노예들은 잠시나마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로마 황제들은 연극을 매우 좋아했어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극장 관람 규정을 정립하고 공연을 장려했어요. 공연이 열리는 지역을 직접 방문해 배우들의 대사를 읊조리곤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죠. 제3대 황제인 칼리굴라는 가수·무용가로 활동했고, 극장 관람석에 앉아 공연 중인 배우의 대사를 따라 하곤 했대요.

제5대 황제 네로는 연극광(狂)으로 유명해요. 리라를 연주하면서 자작곡을 노래해 '배우 황제'라 불릴 정도였죠. 65년 수도 로마에서 '네로 축제'를 열고 폼페이우스 극장에서 공연했는데, 갈채를 보내지 않은 관객을 채찍질했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역사가 타키투스의 기록에 따르면 대화재 때 수도 로마가 불타는 중에도 '트로이의 함락'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제9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로마 시민들의 마음을 얻고자 마르켈루스 극장 무대를 재건했고, 극작가에게 금전적 지원을 하는 등 예술인 처우에 신경 썼어요. 이렇게 제정 로마 시대 들어 화려한 전성기를 구가했던 로마 연극은 이교 신을 허용하지 않는 기독교가 로마 국교가 되면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최근 이탈리아 로마 한 호텔 부지 밑에서 발견된 로마 네로 황제의 극장 유적. /위키피디아
최근 이탈리아 로마 한 호텔 부지 밑에서 발견된 로마 네로 황제의 극장 유적. /위키피디아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마르켈루스 극장. /AP 연합뉴스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마르켈루스 극장. /AP 연합뉴스
서민영 계남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김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