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베트남 다낭 부근 유네스코 유산 지켜내… 폴란드 출신으로 지뢰·풍토병과 싸웠죠

입력 : 2023.08.08 03:30

크비아트코프스키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
'경기도 다낭시'라는 말을 들어봤나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 베트남 중부 도시 다낭을 부르는 별명이랍니다. 다낭은 반경 100㎞ 안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미선·호이안·후에 세 곳이나 있어요. 세 장소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폴란드에서 이주해 와 베트남에서 세상을 떠난 카지미에시 크비아트코프스키(1944~1997·사진)가 애정과 노력을 들여 지켜낸 산물이라는 점입니다.

크비아트코프스키는 폴란드 동부 도시 루블린에서 태어났어요. 크라쿠프 공대에서 건축 석사 학위를 받고, 1972년 국립 기념물 복원 사무소(PKZ) 루블린 지점에서 일하기 시작했죠. PKZ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폴란드 문화유산을 복원하기 위해 1950년 세워진 공공기관이에요. 그는 1974년부터 건축 사무소에서 일하다 1979년 12월 PKZ에 다시 합류했어요.

당시 베트남은 베트남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문화 유적을 복구하기 위해 유네스코에 도움을 청했어요. 같은 공산권 국가였던 폴란드는 PKZ 인력을 베트남에 파견했고, 1981년 크비아트코프스키는 PKZ 책임자로서 베트남으로 향했습니다. 16년 베트남 생활의 시작이었어요.

그가 처음 손댄 곳은 고대 참파(Champa)의 성지 미선이었습니다. 참파는 192년부터 1832년까지 1600여 년 동안 베트남 중남부에 이어진 참족의 나라를 총칭해요. 미선에는 4~14세기에 걸쳐 시바신에게 봉헌한 힌두교 사원 유적 약 70곳이 몰려 있어요. 15세기 베트남 영토가 된 후 거의 잊혔다가 1885년 프랑스인이 발견해 알려졌죠. 크비아트코프스키와 동료들은 대나무 오두막에서 먹고 자며 지뢰와 풍토병과 싸우는 열악한 환경에서 오랜 기간 노력한 끝에 미선 상당 부분을 복원했습니다.

1982년 그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호이안을 방문했습니다. 호이안은 15~18세기 일본·중국·포르투갈·네덜란드 등 다양한 국적의 상인들이 왕래한 국제 무역항이었어요. 각국 문화가 진하게 남은 거리가 형성됐죠. 19세기부터 무역 중심지가 다낭으로 바뀌면서 쇠퇴했지만, 덕분에 옛 모습이 온전히 남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급격한 현대화와 맞물려 호이안 지역 정부는 낡은 건물을 철거하고 신식 콘크리트 건물을 지으려 했어요. 크비아트코프스키가 지역 전체를 보존해야 한다고 간곡히 설득한 끝에 지금은 베트남에서 가장 운치 있는 관광지가 됐답니다.

1993년 유네스코는 베트남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수도 후에의 왕성과 옛 시가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어요. 1997년 크비아트코프스키는 왕성 복원 공사 책임자가 됐지만, 같은 해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하죠. 그가 심혈을 기울였던 미선과 호이안은 199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됩니다. 2007년 호이안 중심가 공원에는 그를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어요. 그의 애칭을 따 카지크 공원으로 불린답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