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다, 이 책!

어디라도 '틈만 나면' 활짝 피어나는 들풀… 삶의 의지만 있다면 나로 살아갈 수 있어

입력 : 2023.08.03 03:30

틈만 나면

어디라도 '틈만 나면' 활짝 피어나는 들풀… 삶의 의지만 있다면 나로 살아갈 수 있어
이순옥 지음 | 출판사 길벗어린이 | 가격 1만9500원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풀.' '잡초'의 사전적 정의예요. 사람이 돌보지 않는데도 쑥쑥 자라고, 눈에 띄는 대로 뽑거나 독한 제초제를 뿌려도 여간해선 잘 사라지지 않아요. 이런 끈질긴 면 때문에 잡초는 강인함의 상징이 됐죠.

그런데 저명한 식물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 박사는 우리 상식과 정반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는 잡초가 사실 너무나 연약한 존재라고 해요. 다른 식물과 경쟁해서 이길 수 없을 만큼 약하기 때문에, 잡초의 기본 전략은 '싸움을 피하는 것'이라고 해요. 그래서 강한 식물이 자라지 않는 곳만 골라서 자리 잡기를 생존 방식으로 택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잡초는 쓸모없고 해롭기만 한 식물일까요? 식물학자들은 '잡초는 농작물과 비교했을 때 그 가치가 조금 모자라는 식물'이라고 설명해요. 오랫동안 잡초로 취급받다가 나중에 숨은 가치를 인정받아 농작물이 된 경우도 있다고 해요. 미국 시인이자 철학자 랠프 월도 에머슨은 "잡초는 아직 그 가치가 발견되지 않은 식물"이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렇다면 나쁘거나 해로울 듯한 느낌을 주는 '잡초'라는 이름 대신 '들풀'이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그러면 이전과는 다르게, 귀하고 아름다운 생명으로 보이지 않을까요?

그림책 '틈만 나면'은 볼로냐 국제 아동 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세 번이나 선정된 이순옥 작가의 최근 작이에요. 강한 생명력을 지닌 들풀이 주인공이죠. 책장을 펼치면, 들풀은 혼잣말을 시작해요. "틈만 나면, 작은 틈만 나면, 나는 태어날 거야. 쑥쑥 자랄 거야. 멋진 곳이 아니어도 좋아. 조금 답답해도 상관없어. 어디라도 틈만 있다면 나는 활짝 피어날 수 있어."

그림 속에서 들풀은 정말 어디서든 자라나고 있어요. 보도블록과 맨홀 뚜껑 사이, 시멘트 담벼락의 갈라진 틈, 차량 진입 방지 철제 기둥 아래, 하수도 구멍 입구, 전봇대 아래…. 줄지어 선 화분에 무성하고 멋진 식물이 하나씩 자리 잡고 있어요. 그 화분 아래, 공원 벤치 사이에도 끼어들어 들풀은 자라고 있네요.

"주인공이 아니면 어때. 나를 위한 자리가 없으면 어때." 들풀은 말합니다. "한 줌 흙과 하늘만 있다면 나는 꿈을 꿀 수 있어." 사람들 발에 밟히거나 자동차 배기구의 유독가스를 마시면서도 들풀은 삶의 의지를 다집니다. "괜찮아, 나는. 나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들풀이 이렇게 말하는 장면에선 순간 울컥,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해요. 들풀은 이제 자신의 희망을 말해요. 멀리 퍼져 나갈 것이고, 벽을 타고 높이 올라가 보기도 할 것이며, 담과 경계를 훌쩍 넘어가 보기도 할 거라고 말해요.

그러고 이렇게 끝을 맺어요. "작지만 힘이 있는 나는. 여리지만 살아 있는 우리는. 틈만 나면." 생의 의지와 희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멋지게 표현한 그림책입니다.

김성신 출판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