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명화 돋보기] 벽과 바닥 경계 없어… 초현실적 입체 세상이 펼쳐져요
입력 : 2023.07.31 03:30
살바도르 달리 미디어아트전
- ▲ 서울 광진구 ‘빛의 시어터’에서 열리는 ‘달리, 끝없는 수수께끼’ 전시 일부. /TMONET
몰입형 미디어아트는 디지털 영상으로 관람자의 온몸을 에워싸는 예술을 말해요. 벽에서 바닥까지 이미지가 경계 없이 전부 이어지고, 장면과 장면이 서서히 바뀌어요〈사진 1〉. 그림이 다음 그림으로 바뀌는 과정이 드러나 마치 무대 전체가 움직이는 효과를 낸답니다. 전시 디자이너 잔프랑코 이안누치가 총감독을 맡았고, 기술 전문가가 비디오 애니메이션을, 음악 전문가가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 편곡을 담당하는 등 여럿의 공동 작업으로 완성됐어요. 달리 그림이 주제 이미지이기 때문에 미리 살펴보고 간다면 한결 더 집중해서 전시를 감상할 수 있을 겁니다.
평범한 것 극도로 싫어한 살바도르 달리
살바도르 달리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피게레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부모를 떠나 독립하면서 피게레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카다케스 바닷가 마을에서 살았어요. 화가로 활동하면서 프랑스 파리에서 초현실주의 예술인들과 교류하고 미국 뉴욕에서 전시회를 여는 등 대도시를 돌아다니며 이름을 떨쳤습니다. 하지만 말년에는 건강이 나빠져 고향 피게레스로 돌아갔어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내가 살바도르 달리라는 사실이 너무 기쁘다"라고 외쳤던 그는 젊은 시절 스스로 천재라고 확신했어요. 사람들은 그가 정말로 천재였을 수도 있고, 천재가 되는 비법을 진작 알았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 비법이란 바로, 천재인 척 비범하게 말하고 행동하면 된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랬을까요? 달리는 평범한 물건, 평범한 취향, 평범한 상상 등 평범한 것은 지루해하며 지극히 싫어했어요. 주변 사람들 눈에는 달리가 오히려 광기 있는 괴상한 사람으로 보였지요. 달리는 겉보기엔 과다하게 자신감 넘쳤지만, 자기 자신 외에는 그 누구와도 쉽게 마음을 나눌 수 없었던 외로운 소년이기도 했습니다.
초현실주의 미술가로서 달리는 일상에서와 마찬가지로 남들과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았어요. 초현실주의는 1920~1940년대 유럽 문학과 예술계에서 유행했던 흐름입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꿈, 환상, 욕망이나 무의식의 영역까지 작품에 끌어내려고 했어요. 보이는 현실 너머, 그 이면까지 주제로 다루고자 한 것이죠.
〈사진 2〉는 달리가 프랑수아 밀레의 유명한 그림 '만종'을 보면서 상상한 그림이에요. 밀레의 '만종'은 해 질 무렵 석양을 배경으로 밭일을 마친 가난한 부부가 감사 기도를 드리는 그림이에요. 그런데 달리는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폐허가 돼 버린 낡은 전망대처럼 부부를 세워 놨어요. 고요함 속에서 부동 자세로 가만히 서 있는 두 인체를 건축물로 바라본 것입니다.
달리의 비범한 환상은 그의 연인 갈라를 그린 초상화에서도 볼 수 있어요. 스물다섯 살 달리는 열 살 연상인 갈라와 사랑에 빠졌고, 이후 그림 속에 그녀를 자주 등장시켰어요. 〈사진 3〉은 갈라의 얼굴이면서 동시에 우주를 돌고 있는 천구입니다. 달리의 우주에는 무한히 많은 천구가 돌고 있는데 그것들은 궁극적으로 갈라의 형상을 이루고 있어요. 천구들의 배열 속에서 갈라의 눈과 눈썹, 머리카락, 입술 등이 도드라짐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평면이지만 우주 공간의 깊이를 갖고 있고, 멈춰 있는 얼굴이지만 각 구체의 회전 에너지를 품고 있어요. 갈라가 달리에게 그런 영감을 주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사진 4〉는 '환각을 일으키는 투우사'라는 제목의 커다란 그림이에요. 밀로의 비너스상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몇 차례 반복되며 흐릿해지는 가운데 슬며시 투우사의 눈·코·입 형태가 드러나요. 한 이미지에 다른 이미지를 숨겨놓은 수수께끼 같은 이중 이미지랍니다. 배경에선 작은 입자와 파리가 뒤에서 앞쪽으로 몰려오는 듯한 느낌이 나고, 화면 왼쪽 아래로는 창에 찔려 쓰러진 황소의 머리가 놓여 있어요. 이 그림은 마치 반투명한 그림 몇 점을 겹쳐 놓은 듯 중첩 효과를 내요. 현실 배후에 겹겹이 놓여 서로 교차하는 복합적 차원의 현실을 암시하는 듯하죠. 이번 미디어아트 전시에서는 작은 입자가 사방에서 변화무쌍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그림을 입체적으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달리는 시대적으로 오늘날과 같은 기술적 환경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의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은 오래전부터 이미 지금의 세계를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만일 달리가 살아있다면, 그래서 자신의 상상이 21세기 몰입형 미디어아트로 구현된 것을 본다면 뭐라고 재치 있게 말할지 궁금하네요.
- ▲ 살바도르 달리, ‘밀레의 ‘만종’에 대한 고고학적 회상’, 1934년쯤, 미국 세인트피터즈버그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 /갈라-살바도르 달리 재단
- ▲ 살바도르 달리, ‘천구의 갈라테아’, 1952년, 스페인 피게레스 달리극장미술관. /갈라-살바도르 달리 재단
- ▲ 살바도르 달리, ‘환각을 일으키는 투우사’, 1970년쯤, 미국 세인트피터즈버그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 /갈라-살바도르 달리 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