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건축가 김수근의 개발 계획은 무산됐지만 금융 기관 모여 '한국의 맨해튼' 별명 얻어

입력 : 2023.07.25 03:30

여의도

서울 영등포구 63빌딩에서 바라본 여의도 한강변 건물 모습. /박상훈 기자
서울 영등포구 63빌딩에서 바라본 여의도 한강변 건물 모습. /박상훈 기자
지난 4월 서울시가 여의도 아파트지구 내 12개 단지에서 규제를 완화해 최고 200m(최대 70층) 높이까지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어요. 국회의사당이 있어 건물 높이가 41~ 51m로 제한됐던 서(西)여의도는 건물 높이를 75~170m까지 지을 수 있게 된다고 해요.

원래 여의도는 모래로 된 황량한 땅이었어요. 큰비가 내려 한강이 불어나면 늘 잠기곤 했죠. 1916년 여의도에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장이 생겼고, 6·25 전쟁 직후에는 국제공항이 문을 열었어요. 하지만 홍수에 취약해 공항 기능은 1960년대에 김포로 완전히 넘어갑니다.

여의도가 본격적으로 개발된 시기는 1968년입니다. 당시 서울 사대문 안에 인구가 모이면서 주거 대란이 일어났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강 이남에 부도심을 짓기로 계획한 곳이 바로 여의도였어요. 한강 범람을 막기 위해 옆에 있는 바위섬인 밤섬을 폭파한 뒤 돌과 흙을 가져다 제방을 쌓았습니다. 둘레 7㎞, 높이 15m의 둑을 5개월 만에 완공하면서 290만㎡의 거대한 대지가 생겼어요.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은 건축가 김수근에게 여의도 계획을 맡겼습니다. 그는 유토피아적 도시를 여의도에 구현하려고 했어요. 서쪽 끝에는 국회의사당, 동쪽 끝에는 시청과 대법원을 지으려 했고, 중앙에는 상업·업무지구, 동남·동북부에는 주거지역을 만들어 구분했죠. 자동차 수요가 늘어날 것을 예측해 1층에는 자동차 도로를 놓고, 7m 위에는 여의도 전체를 연결하는 보행자 전용 도로를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여의도 공사를 하면서 서울시 재정이 바닥난 거예요. 서울시는 자금 마련을 위해 대법원 대지에 고급 아파트를 만들어 민간에 분양했어요. 이 아파트가 1971년 완공한 시범아파트입니다. 당시 12층 높이로 지어진 시범아파트는 중앙공급식 난방과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국내 최초의 아파트로 이후 우리나라 중산층 아파트의 전형이 됐어요. 나머지 땅도 민간 아파트 개발 등을 목적으로 나눠 팔리면서 초기 도시 계획은 흔들리죠.

결정적으로 여의도 중앙에 거대한 콘크리트 광장이 생기면서 당초 김수근의 계획은 물거품이 됩니다. 대신 1976년 KBS 사옥, 1980년 동양방송 사옥(현 KBS 별관), 1982년 MBC 사옥, 1991년 SBS 사옥이 생기며 여의도는 오랜 기간 방송가(街)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또 1978년 금융감독원, 1979년 한국거래소 이전 이후 다양한 금융 기관이 모이면서 '한국의 맨해튼'이란 별명도 얻었습니다.

땅의 넓이를 비교할 때 '여의도 면적의 몇 배'라는 표현을 자주 쓰죠. 2012년 국토교통부는 제방 안쪽 토지 면적인 290만㎡로 여의도 면적을 통일하기로 했어요. 축구장 약 406개를 합친 넓이입니다. 여의도를 만들기 위해 폭파했던 밤섬은 놀랍게도 퇴적물이 계속 쌓이면서 지금은 원래보다 6배 이상 커졌어요. 오랜 시간 사람 손을 타지 않아 2012년 생태적으로 가치 있는 습지인 람사르 습지로 지정됐습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