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 이야기] "정치가, 정열·책임감·균형 감각 갖춰야" 독일 사회학자 베버의 강연 엮은 책이죠

입력 : 2023.07.18 03:30

직업으로서의 정치

독일 사회학자이자 법학자 막스 베버. /위키피디아
독일 사회학자이자 법학자 막스 베버. /위키피디아
"자기가 제공하고자 하는 것에 비해 세계가 자기 처지에서 볼 때 너무 어리석거나 너무 야비하더라도 좌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 그 어떤 일에 직면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소명'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독일 사회학자이자 법학자인 막스 베버(1864~1920)가 1919년 뮌헨 대학에서 한 강연을 엮은 책이에요. 이 책은 '정치의 의미와 정치가의 역할을 이해하려면 꼭 읽어야 하는 사회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작품이죠. 독일이 1차 세계 대전에서 패하고, 연이어 독일 제국이 붕괴하면서 독일은 물론 유럽 전역에서 정치적 격변이 일어나요. 군주와 귀족 중심 정치 체제가 힘을 잃고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죠. 학생들은 석학(碩學) 베버에게 혼란스러운 시기를 돌파할 수 있는 지혜, 즉 어떻게 정치에 개입해야 하는가를 물었어요.

베버에 따르면 정치란 '국가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이에요. 그런 활동을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이 바로 정치가인데,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어요. 하나는 '정치를 위해' 사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에 의해' 사는 사람이에요. 정치를 위해 사는 사람은 정치를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권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즐겁게 생각하죠. 이런 사람은 정치에 헌신함으로써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가요. 반면 정치에 의해 사는 사람은 정치를 수입원으로만 생각해요. 그렇다고 정치의 의해 사는 삶을 무시하면 안 돼요.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정치에 의한 삶도 가능하기 때문이에요.

직업으로서 정치를 택한다고 모두가 잘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정열과 책임감, 마지막으로 목측(目測) 능력을 갖춰야 진정한 정치를 할 수 있어요. 목측의 사전적 정의는 '눈으로 보아 크기나 거리 따위를 어림잡아 헤아림'이에요. 베버가 말한 목측 능력이란 이런 헤아림을 통해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인식하는 균형 감각을 말해요.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뽐내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히죠. 특히 정치인은 국가 운영에 헌신한다는 과도한 허영심에 사로잡히곤 하는데, 이러면 자기 행동의 결과를 가볍게 여기고 화려한 정치의 겉모습만 좇기 마련이에요.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목측 능력이 없는 정치인의 전형적인 모습이죠. 그런 점에서 정치인은 매 순간 허영심과 싸워야 해요.

베버는 학생들에게 정치적 행동에 나서라고 하지 않아요. 오히려 "정치란 정열과 목측 능력을 동시에 갖고서 단단한 널빤지에 강하게 또 천천히 구멍을 뚫는 일"이라며 신중을 기하라 하죠. 100년도 훨씬 지난 강연을 엮은 '직업으로서의 정치'가 아직도 회자되는 것은, 혼란스러운 정치 현실과 그것을 이겨낼 해답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