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사람 등에 자라며 그늘 되어주는 나무… 행위 예술가가 그려낸 아름다운 관계
입력 : 2023.07.06 03:30
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
이난영 글·그림 | 출판사 소동 | 가격 1만8000원
"비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이었습니다. 어디선가 황급히 새들이 날아와 나무의 어두움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아, 나무가 새들을 감쪽같이 보호해주고 있구나. 저 어둠이 새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난영 글·그림 | 출판사 소동 | 가격 1만8000원
"비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이었습니다. 어디선가 황급히 새들이 날아와 나무의 어두움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아, 나무가 새들을 감쪽같이 보호해주고 있구나. 저 어둠이 새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작가이자 행위 예술가인 저자는 서울 마포구 아현동 등 재개발 지역에서 줄곧 살았대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그곳에 아주 오래 살았던 나무와 사람들의 뿌리가 너무 쉽게 뽑히고 사라져서 저자는 안타까움을 느꼈어요. 그래서 저자는 풀, 꽃, 나무 등 다양한 식물과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관찰해 그림과 글에 담았어요.
책 속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은 대부분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잠들어 있어요. 많이 지쳐 보이죠. 푸르고 역동적인 나무와 대비돼 그림 속 사람들은 더 안쓰러워 보여요. 그중 아주 인상적인 그림이 하나 있어요. 평범한 철로변 풍경이에요.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 걸어가는 사람, 계단을 오르는 사람. 한 화면에 여러 사람이 등장하지만 하나같이 어깨가 축 처져 있고 고개를 숙이고 있어요. 그런데 이들의 등마다 나무가 한 그루씩 자라고 있어요. 그것도 잎이 아주 푸르고 무성한 커다란 나무예요. 사람 등에서 자라는 나무라니, 굉장히 기이한 풍경처럼 느껴져요. 하지만 저자는 일상 풍경처럼 이 장면을 묘사하고 있어요.
페이지를 넘기자 이번엔 열차 안 풍경이에요. 지친 몸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비스듬히 기대어 앉은 어떤 이의 모습이 보여요. 그의 등에서도 잎이 푸른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고 있어요. 저자는 이렇게 말해요. "많은 이들이 그렇게 숨겨 놓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마저 빼앗긴다면 더 이상 숨 쉴 수 없게 될지도 몰라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는, 우리를 간신히 버티게 하는 나무 한 그루."
책의 첫 장에서 어두운 그늘을 만들어 새들을 지켜주는 나무를 본 저자는 이렇게 생각을 이어가요. '그렇다면 우리도 더 어두워져도 괜찮겠구나.' 이윽고 소중한 깨달음을 얻어요. '그러면 우리의 어두움 속에서 또 다른 생명이 쉼을 얻겠구나'라고요. 여기에 등장하는 그림도 인상적이에요. 나무에 기댄 사람의 흐릿한 형상이 마치 푸른 영혼처럼 보이거든요. 그리고 그 형상은 어느새 나무와 섞여 하나가 되고 있어요.
작가는 '나무 한 그루 없는 곳에서 자란 내가, 나무에 대한 일말의 지식도 추억도 없는 내가, 왜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가'라며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그러곤 '이 세상에는 단지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아름다운 존재가 참 많다'는 깨달음을 얻어요. 이 책은 시적인 글과 그림을 통해 나무와 사람의 아름다운 관계에 대해 우리를 깊은 생각으로 이끄는 자연 에세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