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귀신 들린 집' 이야기 원형인 공포 소설… 시골 저택서 벌어진 초자연적 사건 담아

입력 : 2023.07.03 03:30

나사의 회전

[재밌다, 이 책! '귀신 들린 집' 이야기 원형인 공포 소설… 시골 저택서 벌어진 초자연적 사건 담아
헨리 제임스 지음|최경도 옮김출판사 민음사가격 8000원

독특한 분위기와 긴장감이 매력적인 미국 소설이에요. 요즘처럼 더운 여름날 읽으면 서늘해지죠.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여러 남녀가 모여 으스스한 유령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이 소설은 시작해요. 이 특별한 모임에 참석한 더글러스는 어느 여인의 기록을 읽어줘요. 여인이 22세 때 영국 블라이의 시골 저택에서 가정교사로 일하며 마일즈와 플로라 남매를 돌본 경험을 남긴 기록이죠.

부모를 잃은 마일즈와 플로라는 삼촌이 맡아 키웠어요. 런던에서 일하느라 바쁜 삼촌 대신 마일즈와 플로라는 저택을 관리하는 그로스 부인과 살고 있죠. 이 소설은 액자식 구성으로 내부 이야기 속 화자는 가정교사입니다. 그는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플로라와 방학을 맞아 돌아온 오빠 마일즈에게 금세 매료돼요. 이들을 보살피는 것에 강한 책임감을 느낀 가정교사는 그들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하지요.

그런데 곧 저택에서는 불가사의한 사건이 벌어져요. 이상한 남녀가 저택 주변을 서성이고, 사유가 제대로 적혀 있지 않은 마일즈의 퇴학 통지서가 도착하고, 플로라가 가정교사를 멀리하기 시작해요. 저택의 고요하고 어두운 분위기, 그 속에서 들려오는 불규칙한 소리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긴장감을 조성해요. 가정교사의 모호한 서술 때문에 사건의 실체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아요. 읽는 사람은 책장을 넘길수록 이 이야기에 빠져들지만 도통 갈피를 잡을 수가 없지요. 저택에서 벌어지는 초자연적인 현상은 현실인지 환상인지 의문을 불러일으키며 여러 가지 해석의 여지를 남겨요.

이러한 서술 방식은 이 소설이 출간된 1898년 당시에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기법이에요. 이 소설의 모호성은 오히려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작품을 '명작'이라 부르는 이유가 됐어요. 정신분석학과 기호학에서도 논의되고 있고요. 또 심리적인 갈등을 겪는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배치해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평면적인 여성 캐릭터가 다수였던 이전의 소설과 달리 입체적이고 다양한 모습의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켰기 때문이에요.

'나사의 회전'이라는 제목은 이 소설의 주제와 인물들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나타낸 거예요. 나사는 회전할수록 점점 더 옥죄어지는데요. 작품 속 이야기 역시 점점 더 긴장되는 상황에 빠지는 걸 의미해요. 이 소설은 현대 미국 문학의 기반이 됐어요. 헨리 제임스의 스타일과 주제는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죠. 이 소설에 등장하는 '블라이의 시골 저택'은 이른바 '귀신 들린 집'의 원형이 돼 수많은 영화·드라마·연극 등의 모티프가 됐지요. 니콜 키드먼 주연의 영화 '디 아더스'와 넷플릭스 드라마 '블라이 저택의 유령'이 유명해요. 여러모로 문학사에서 중요한 작품이죠.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재미있다는 거예요. 퍼즐 조각을 스스로 맞춰가는 독서 경험이 공포 영화를 보는 것보다 흥미로울 거예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