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건축계 노벨상' 수상한 최초의 여성… 벽·바닥·천장을 물 흐르듯 연결시켜

입력 : 2023.06.27 03:30

자하 하디드

/자하하디드아키텍츠
/자하하디드아키텍츠
매년 여름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열리는 건축 프로젝트 '서펜타인 파빌리온'에 세계 건축계의 관심이 집중됩니다. 영국 공공 현대미술관인 서펜타인 갤러리는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여름마다 갤러리 앞마당에 임시 건물인 파빌리온을 짓고 파티를 열어요.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지만 영국에는 건물을 지은 적이 없는 건축가가 설계를 맡습니다. 능력 있고 젊은 건축가에게는 꿈의 무대죠. 그 시작은 2000년 이라크 출신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1950~2016 ·사진)였어요. 그가 지은 임시 천막이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모으며 흥행에 성공한 뒤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어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태어난 자하 하디드는 런던에 있는 건축 학교 AA스쿨에서 건축을 배웠습니다. AA는 미국 하버드대와 함께 세계 최고 건축 교육 기관 중 하나예요. 졸업 후 하디드는 1980년 런던에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를 설립하며 독립합니다. 하지만 당시 건축계는 서구 남성 중심의 보수적 문화가 팽배했어요. 비(非)서구 출신으로 인정받은 거장도 모두 남자였습니다. 아랍계 여성이라는 점은 하디드가 평생 극복해야 할 벽이었죠. 하디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발표하며 주목받았지만, 독립 후 10년 넘게 건물을 짓지 못했어요. 뛰어난 독창성과 예술성에 비해 지나치게 난해하고 추상적이어서 사람들이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가졌기 때문이죠. 공모전에서 우승해도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공사비를 예측할 수 없다'는 이유로 프로젝트가 취소되기 일쑤였습니다. 쉼 없이 설계도를 내보이던 그에게 붙은 별명은 '종이 건축가'였죠.

1994년 그는 드디어 자신의 첫 건물을 완공합니다. 가구 회사 비트라의 독일 공장에 지은 소방서인데 날카로운 모서리와 하늘로 치솟는 대각선 지붕 외형이 마치 조각처럼 보여 '돌로 된 번개'라는 별명이 붙으며 화제가 됐어요. 이후 여러 건물을 설계하며 명성을 얻었어요. 2004년 그는 여성 최초로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으며 21세기 최고의 스타 건축가로 도약하죠.

하디드는 '곡선의 여왕' '비정형 건축의 여제'라고 불렸는데요. 그의 건물은 벽과 바닥, 천장의 구분이 사라져 마치 물이 흐르는 듯 유기적인 모습을 띠어요. 불시착한 우주선 같은 미래적인 이미지 덕분에 짓는 족족 도시의 랜드마크가 됐습니다. 이탈리아 로마 21세기 국립 미술관, 중국 광저우 오페라 하우스, 2012 런던 올림픽 수영장, 아제르바이잔 바쿠에 지은 헤이다르 알리예프 센터, 베이징 다싱 국제공항 등은 걸작으로 꼽히죠. 하디드의 건축 세계는 최첨단 컴퓨터 프로그램과 시공 기술을 만나 완성된 상상과 공학의 결정체였어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도 그의 대표작입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비정형 건물로, 직선이나 평면을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외부에는 크기와 모양이 서로 다른 알루미늄 패널 4만5133장을 붙였어요. 설계 당시 동대문운동장 터라는 지역적 맥락을 무시한 '나쁜 디자인'으로 손가락질받았지만, 지금은 서울의 풍경을 바꾼 대표적인 건축 명소로 재평가받고 있습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