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건널목 카드' '점자 버거' 등 기술로 함께 잘 사는 다정한 세상 향해 가요

입력 : 2023.06.26 03:30

이토록 다정한 기술

[재밌다, 이 책!] '건널목 카드' '점자 버거' 등 기술로 함께 잘 사는 다정한 세상 향해 가요
변택주 지음 | 출판사 김영사 | 가격 1만6800원

기후 위기, 생태 파괴, 빈곤 문제, 노인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과 그 실천 방안을 소개하는 책이에요. 저자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져요. 이를테면 이런 것이지요. '시각장애인들이 비장애인 못지않게 삶을 누릴 수는 없을까?' '사정이 어려운 이들이 굶주리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시행착오와 변화를 거치며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있는 움직임을 소개해요. 이러한 움직임을 살피다 보면, 기후 위기, 생태 파괴, 빈곤 문제, 노인 문제 등이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나 혼자'가 아닌 '우리'가 함께 노력해야 함을 깨닫게 되지요.

예를 들어, 싱가포르의 '건널목 카드'는 어르신과 장애인을 보듬는 따뜻한 기술이에요. 늙거나 장애가 있어 걸음이 느린 사람들이 마음 놓고 건널목을 건널 수 있도록 파란불이 켜지는 시간을 늘려주는 신호등 연장 카드예요. 어르신이나 장애인처럼 이동에 제한이 있는 사람만 받을 수 있답니다. 신호등에 붙어 있는 단말기에 카드를 대면 건널목 길이에 따라 파란불이 켜지는 시간이 짧게는 3초에서 길게는 13초까지 늘어나요. 좀 더 편안하고 여유롭게 길을 건널 수 있게 해주지요.

수퍼마켓 '알버트 하인'의 채소밭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해요. 손님들은 먹고 싶은 나물이나 채소를 직접 따서 바구니에 담고 계산대에서 무게를 달아 값을 치러요. 마치 텃밭을 직접 가꿔 채소를 수확한 것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어요. 밭에서 따서 바로 먹으니 시들어서 버리는 채소도 줄일 수 있지요.

또 말이 통하지 않아도 환자들이 자신의 통증을 구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돕는 '통증 픽토그램', 시각장애인을 위해 버거 위에 참깨로 점자를 박아 넣은 '윔피 버거',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읽을 수 있는 문자 폰트 '브라유 노이에', 마음대로 도수를 바꿀 수 있어 안경 살 돈이 없는 사람들도 비용 부담이 적은 '어드스펙스'와 '튜너블 안경', 파킨슨병 환자의 손 떨림을 막아주는 장갑 '자이로 글러브'가 있어요. 이 책은 이처럼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기술 사례를 90여 가지나 소개해요. 이러한 기술은 좀 더 다정한 세상을 꿈꾸게 하지요.

기술이 환경을 파괴하고, 일자리를 빼앗고, 양극화를 심화한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아요. 그러나 기술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도 있어요. 이 책이 그 증거지요. 이 책을 읽고 나면 기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 거예요. 새로운 세상을 꿈꾸면서 그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힘을 얻고 싶을 때 읽으면 좋아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