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동물 이야기] 수염으로 먹잇감 찾아… 알 낳은 자리에 20㎝ 자갈탑 쌓는대요

입력 : 2023.06.21 03:30

어름치

어름치는 몸의 양옆 줄무늬가 물 밖에서도 눈에 어른거린다 해서 ‘어름치’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해요. /문화재청
어름치는 몸의 양옆 줄무늬가 물 밖에서도 눈에 어른거린다 해서 ‘어름치’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해요. /문화재청
얼마 전 문화재청이 경기도 연천에 있는 재인폭포를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했어요.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한 이 폭포에는 천연기념물로 보호받는 민물고기 어름치도 살고 있대요. 다 자란 몸길이가 40㎝에 이르는 어름치는 한강과 임진강·금강 및 지류의 맑은 물에서 살아간답니다. 몸의 양옆으로는 작은 점들이 촘촘하게 늘어서 줄무늬를 이루고 있어요. 이 무늬가 물 밖에서도 눈에 어른거린다고 해서 '어름치'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는 이야기도 있죠.

어름치의 입가에는 잉어나 메기처럼 수염이 나 있어요. 이 수염은 먹잇감이 어디 있는지 찾아내는 레이더 역할을 하죠. 어름치는 평소에는 수서곤충(물속에서 사는 곤충)을 잡아먹지만, 산란철인 4~5월이 되면 식성이 바뀌어 다슬기를 즐겨 먹는대요. 그러면서 번식을 준비하는데, 다른 어떤 물고기도 갖고 있지 않은 독특한 습성이 있답니다. 바로 '산란탑 쌓기'죠. 부모가 될 준비를 마친 암컷과 수컷 어름치는 수심 42~62㎝ 되는 지점에서 길이 13~17㎝, 너비 9~13㎝ 정도 되는 구덩이를 함께 파요. 그런 다음 적게는 1500개, 많게는 3000개의 알을 낳죠. 그다음 입으로 일일이 자갈을 물어와 구덩이를 덮는답니다.

이 자갈이 차곡차곡 덮이면서 탑처럼 높아져 '산란탑'이 되는 거예요. 산란탑의 높이는 대략 20㎝ 정도인데, 부모 물고기들의 몸집이 클수록 더 높아진대요. 이렇게 쌓은 산란탑은 알이 물살에 휩쓸려가거나 다른 물고기의 먹이가 되는 걸 막아주죠. 우리나라의 민물고기들은 알이 유실되지 않고 온전히 부화할 수 있도록 저마다 여러 방법을 동원해요. 붕어나 잉어는 알을 물풀에 붙여 떠내려가지 않게 하고요. 꺽지나 밀어는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한동안 지키며 보호하죠. 납자루는 민물조개 안에 알을 낳고요.

그런데 탑을 쌓는 방식으로 알을 보호하는 물고기는 전 세계를 통틀어서 어름치 말고는 없대요. 어름치 암컷과 수컷이 알을 낳기 전에 강바닥에 구덩이를 파는 건, 마치 바다에 살던 연어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와 알 낳을 자리를 만드는 장면을 연상케도 해요. 하지만 알을 낳고 기진맥진해 바로 죽는 연어와 달리 어름치는 살아가면서 여러 차례 번식을 하고 산란탑을 쌓는대요. 야생에서 어름치의 가장 무서운 천적은 쏘가리와 꺽지래요.

어름치가 사는 곳은 수질도 맑아야 하지만, 산란탑을 안전하게 쌓을 수 있는 수심과 물살도 갖춰야 해요. 이런 곳이 많은 강이 한강·금강·임진강이죠. 재인폭포가 흐르는 물줄기는 임진강과 연결된답니다. 금강 일대에서는 어름치가 1970년대에 자취를 감췄는데, 최근에 이를 복원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인공적으로 번식시켜 얻은 새끼 고기들을 2000년대 들어 전북 무주, 충북 옥천, 충남 금산 등에 방류하고 있답니다. 이 작업이 성공을 거둬서 금강과 금강 지류 곳곳에서 어름치들이 산란탑을 쌓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정지섭 기자 도움말=국립수산과학원 중앙내수면연구소 송하윤 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