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명화 돋보기] 뒤러와 렘브란트, 펜보다 섬세하게 인물·풍경 묘사했죠
입력 : 2023.06.19 03:30
16~17세기 판화
- ▲ 작품1 - ‘뉘른베르크 연대기’ 속 뉘른베르크의 모습, 목판화, 1493. /위키피디아
복제 기술이 없던 과거에는 미술가도 자신의 작품을 복제해두기 어려웠습니다. 일일이 손으로 똑같이 따라 그려야 했으니까요. 다행히 판화가 발명돼 같은 이미지를 원하는 숫자만큼 여러 점 제작해 널리 배포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간혹 판화를 대량 인쇄한 포스터와 헷갈리는 사람이 있는 듯해요. 하지만 판화는 단순히 원본을 복사한다는 의미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술가의 독특한 개성이 담기거든요.
판화가 원본 미술품으로서 가치를 유지하려면, 두 가지 원칙을 꼭 지켜야 합니다. 첫째, 작가가 직접 판화의 품질을 검사해서 통과한 이미지에 일련번호를 매기고 서명해야 해요. 탈락한 것은 반드시 없애야 합니다. 둘째, 판화 수량을 미리 정해둬야 합니다. 가령 3/50이라는 번호가 붙은 판화는 총 50점으로 한정된 판 중에서 세 번째로 찍었다는 의미예요. 마지막 50번째 번호가 매겨지면, 원판을 파기해 더는 추가로 찍어낼 수 없게 하죠.
역사상 가장 오래된 목판화는 868년 중국에서 두루마리로 제작한 불교 경전 '금강반야바라밀경'에 실린 그림이라고 해요. 유럽에서는 6세기 초부터 옷감에 무늬를 찍을 때 목판을 사용했어요. 하지만 한참 후인 15세기 초 종이가 유럽 전역에 보급되면서 비로소 목판으로 활발하게 책을 인쇄하기 시작합니다. 서양에서 처음 활판 인쇄술을 도입해 정보 기술에 혁신을 일으킨 구텐베르크가 바로 이 시기 인물이지요.
삽화 실린 백과사전 '뉘른베르크 연대기'
<작품1>은 백과사전 '뉘른베르크 연대기'에 실린 독일 도시 뉘른베르크의 풍경을 그린 삽화입니다. 목판으로 찍은 다음 그 위에 손으로 색칠한 판화예요. '뉘른베르크 연대기'는 1493년 출간했는데, 성서나 신화 속 상상의 동물이 등장하고, 유럽 주요 대도시 풍경과 풍속을 풍부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책장을 넘기다 보면 같은 이미지가 여기저기 중복되는 걸 발견하게 돼요. 예를 들어 파리와 마그데부르크의 풍경이 같고, 시에나와 다마스쿠스의 풍경이 같아요. 다양한 도시 이미지를 일일이 목판으로 제작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을 거예요. 그래서 강이 흐르는 도시, 항구가 있는 도시, 산이 있는 도시, 교회가 중심부를 차지한 도시 등 비슷한 유형끼리 함께 묶어, 최소한으로 필요한 원판만 제작했습니다.
뒤러와 렘브란트의 판화
15세기에 인쇄술의 물꼬가 트이면서, 16~17세기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기에는 판화 제작이 크게 유행했어요. 그 시기 유럽에서 회화뿐 아니라 판화 실력으로도 이름을 날렸던 미술가 두 명을 꼽으라고 하면, 16세기 독일의 알브레히트 뒤러(1471~ 1528)와 17세기 네덜란드의 렘브란트 판레인(1606~1669)을 들 수 있을 겁니다. 마침 서울 서초구 부띠크모나코뮤지엄에서 렘브란트의 판화전이 열리고 있어요. 전시는 25일까지입니다.
<작품2>는 뒤러의 목판화 '종말의 네 기수'로, 색칠 작업까지 한 것입니다. 기독교 성경의 요한계시록의 한 장면을 다룬 것이지요. 목판화는 나무를 깎은 후 표면에 잉크를 바르고, 종이에 찍는 방식이에요. 깎인 부분은 움푹 파여 잉크가 묻지 않으므로 흰색으로 나타나고, 볼록한 부분만 검게 찍혀 나옵니다. 이런 판화를 '볼록판화'라고 불러요. 뒤러는 목판화보다 좀 더 섬세한 선으로 세세하게 표현하기 위해 금속판화도 시도했어요.
<작품3>은 뒤러의 금속판화 '아담과 이브'입니다. 납이나 동으로 된 판을 송곳 같은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서 만드는 금속판화는 '오목판화'의 원리를 가지고 있어요. 완성된 원판에 잉크를 바른 후 오목하게 팬 선 자국에만 잉크가 배도록 표면을 닦아내요. 그리고 판화 프레스기에 넣어 선 안에 든 잉크가 종이에 찍혀 나오도록 압력을 가합니다.
금속판을 직접 긁어 새기는 방식을 인그레이빙(engraving)이라고 하고, 금속판에 막을 씌운 후 그림을 새겨넣는 것은 에칭(etching)이라고 해요. 에칭은 산성 액체에 판을 담그는 단계를 거칩니다. 동판에 산(酸)의 부식 작용을 막아주는 물질을 입히고 금속 바늘로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판을 산성 액체에 담그면 그림이 새겨진 부분만 부식돼 잉크가 스며들 홈이 생기죠. 에칭은 목판화나 인그레이빙에 비해 훨씬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분위기의 선을 표현할 수 있답니다. 렘브란트는 인물을 그릴 때 그 사람의 외적 특징뿐 아니라 심리적인 상황까지 담아내는 화가인데, 특히 에칭에 뛰어났어요. <작품4>는 삼십대 초반 시절의 자화상입니다.
16~17세기 목판화와 금속판화는 대부분 흑백 잉크만으로 선의 느낌에만 집중하도록 묘사합니다. 너무 여러 쇄를 찍으면 원판의 선이 무뎌져서 판화 속의 선도 뭉개져요.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찍어낸 작품이 판화로서 가치가 높답니다. 유감스럽게도 렘브란트가 원판을 파기하지 않는 바람에 그가 죽은 후 원판이 심하게 닳은 상태에서 추가로 판화를 찍은 것도 있답니다. 이런 판화에서는 선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하기 어렵겠지요.
- ▲ 작품2 - 알브레히트 뒤러, ‘종말의 네 기수’, 목판화, 1498. /미국 하버드대 호턴도서관
- ▲ 작품3 - 알브레히트 뒤러, ‘아담과 이브’, 금속판화, 1504. /모건라이브러리
- ▲ 작품4 - 렘브란트 판레인, ‘돌난간에 기댄 자화상’, 에칭, 1639. /워싱턴 DC 국립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