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나무·바람·사막·바다 되는 상상하며 끝없이 순환하는 자연·생태 그렸어요
입력 : 2023.06.15 03:30
내가 만일 나무라면
마치 색종이를 오려 붙인 듯한 독특한 표지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는 책이에요. 아래쪽에는 커다란 나무 그림자를 머금은 푸른 강물이 넘실거리고 있어요. 그리고 강가엔 온갖 나무와 풀이 가득해요. 책장을 넘기면 양면에 걸쳐 거대한 밀림이 펼쳐져요. 나무와 풀은 어느 것 하나 서로 비슷한 형태가 없이 모양이 아주 다양해요. 밀림이 거대해서일까요. 그 속에 사는 동물들이 아주 작아 보이네요.
작가는 생명이 가득한 풍경 속에 이렇게 적어 놓았어요. "내가 만일 나무라면, 가지들은 바람 소리에 맞춰 춤췄을 거야." 아름다운 문장이네요. 시적이기도 하고요. 한 장을 더 넘기면 이번엔 이런 문장이 등장해요. "내가 만일 바람이라면, 산들산들 불어 사막으로 씨앗을 옮겼을 거야." 어느새 사막과 오아시스 사이로 낙타가 걸어가는 풍경으로 바뀌어 있네요.
책에 적힌 문장들이 시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짧은 문장이지만, 아주 많은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일 거예요. 작가는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춤을 춘다고 표현하거든요. 그리고 앞 문장에서 '바람'이 등장하면, 뒤이어 바람이 씨앗을 옮긴다고 표현해요. 비슷한 문장을 반복하지만, 작가의 생각이 의미를 찾아 흘러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겉으로는 간단해 보이는 문장이지만, 복잡하고 정교한 여러 가지 이미지와 생각이 절로 떠오르도록 만들어 놓은 거예요. 마치 시처럼 말이에요.
적혀 있는 문장을 눈으로 읽고 있지만, 마치 입으로 노래를 부르는 듯 리듬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시적이에요. "내가 만일 바다라면, 나는 고래들과 함께 노래했을 거야"라는 문장이 등장하면, 다음 장에는 "내가 만일 고래라면, 나는 소금처럼 새하얀 향유고래였을 거야"라고 적혀 있어요. 마치 끝말잇기 놀이와 비슷해요. 자연스럽게 새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계속 따라가고 있어요. '내가 만일 ~라면, ~했을 거야'라는 똑같은 문장 구조를 반복하면서 말이에요. 책은 자연 생태계 속 다양한 존재를 향한 관심으로 우리를 안내해요. 나무에서 시작해 바람, 사막, 모래, 바다, 고래, 소금, 사슴, 새 등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상상을 통해 자연과 생태의 순환 원리를 이해하도록 만들죠.
작가는 이런 문장으로 이야기를 맺어요. "나는 나무가 자랄 수 있게 씨앗을 심고 바람 소리에 맞춰 나뭇가지들과 춤출 거야." 나무가 돼 바람과 춤을 추고 싶었던 처음의 상상으로 돌아간 거예요. 하지만 단순한 반복은 아니에요. 책을 번역한 오은 시인은 "다른 존재가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 자라는 것"이라고 말해요. 관심과 이해를 통해 더욱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성장의 서사를 시적인 문장과 아름다운 그림으로 표현한 멋진 그림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