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칸딘스키도 감탄한 현대적인 의자 제작… 미국 휘트니 뮤지엄 옛 본관도 세웠어요
입력 : 2023.06.13 03:30
마르셀 브로이어
- ▲ 마르셀 브로이어.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헝가리 출신인 브로이어는 유럽에서는 가구 디자이너로, 미국에서는 건축가로 이름을 떨친 인물입니다. 그는 현대적인 디자인 학교의 원조격인 독일 '바우하우스'를 1기로 졸업한 후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모교에서 가구 공방 교수가 됐어요. 그는 대량생산에 대응할 수 있는 현대적인 가구를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았어요.
1925년 그는 20세기 가구의 신기원으로 여겨지는 '바실리 체어'를 만듭니다. 단단하고 가벼우면서도 유연하게 구부러지는 강철관을 뼈대로 쓴 세계 최초의 강철관 의자였어요. 볼트로 연결한 강철관은 뼈대만 남은 건물을 보는 것 같았어요. 여기에 질기면서도 빛을 반사해 은은한 광택이 흐르는 천을 등받이와 팔걸이 등에 연결했죠. 구부러진 파이프와 반질거리는 천이 엮인 의자는 당시 매우 새로운 시도였고 지금 보아도 현대적이에요. 원래 정식 이름은 'B3'였어요. 1930년대 대량생산하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며 단종됐죠. 후에 이탈리아 가구 회사인 가비나가 재생산하면서 '바실리 체어'로 이름을 바꿉니다. 추상미술의 거장 바실리 칸딘스키가 브로이어의 의자를 처음 구매했다는 소문에서 비롯한 이름이었어요. 하지만 이는 와전된 것으로, 칸딘스키가 B3의 시제품을 보고 감탄하자 브로이어가 B3를 선물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브로이어는 강철관의 단단함과 탄성을 이용해 'ㄷ'자 모양으로 몸체를 지탱하는 의자도 만들었어요. 건축에서는 한쪽 기둥만으로 구조를 버티는 형태를 '외팔보' 또는 '캔틸레버'라고 부르는데, 이 원리를 의자에 적용했습니다. 캔틸레버 체어의 시제품을 먼저 만든 네덜란드의 마르트 스탐이 저작권 소송에서 이겨 브로이어는 캔틸레버 체어의 창시자가 되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1928년 등나무 껍질을 엮어 시트와 등받이로 활용한 세스카 체어가 큰 인기를 끌며 브로이어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둡니다.
유대인이던 브로이어는 1937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고, 하버드대에서 교편을 잡습니다. 미국에서는 건축가로 활약했어요. 1945년 설계한 겔러 하우스는 지붕을 나비처럼 짓고 그 아래 거실·식당·주방과 침실 기능을 분리해 전후(戰後) 미국 주택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휘트니 뮤지엄 옛 본관은 마치 지구라트(고대 메소포타미아 건축물)를 거꾸로 쌓은 듯 파격적인 형태가 돋보여요. 구겐하임 뮤지엄과 함께 뉴욕을 대표하는 박물관 건축으로 뽑힙니다. 건축물 100여 점을 설계한 그는 미국건축가협회(AIA)에서 수여하는 AIA 금메달을 받았습니다.
- ▲ 바실리 체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