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방학 때 시골에서 바다 구경하던 소년… 한 소녀 만난 후 '감정의 파도' 느껴요
입력 : 2023.05.18 03:30
그해 여름, 에스더 앤더슨
"방학이었다." 책은 이렇게 시작해요. 기차 안에서 소년이 목을 길게 빼고 창 밖을 내다보고 있어요. "여행 첫날, 짐을 꾸려 혼자 기차에 올랐다. 매 순간이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사람들을 구경했다. 검표원 아저씨가 나를 '꼬마 청년'이라고 불렀다."
이 책은 그림책치곤 크고 두꺼워요. 책을 펼치면 가로 길이가 무려 68㎝나 돼요. 첫 장을 넘기자마자 양 페이지에 걸쳐 긴 철로가 있고, 그 위를 달리는 기차의 모습이 시원하게 펼쳐져요. 이 책은 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청소년 문학가 티모테 드 퐁벨의 함축적이고도 시적인 문장과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이렌 보나시나의 그림이 어우러진 멋진 그림책이에요.
시골 삼촌 집에 내려와 여름방학을 보내던 소년은 삼촌이 빌려주신 자전거를 타고 매일 시골길을 달립니다. 아주 멀리까지 달려갔던 어느 날 소년은 처음 보는 해변을 발견해요. 눈부시게 푸르고 넓은 바다였어요. 소년은 바다의 풍경에 완전히 사로잡혀요. 이 순간 소년은 생각해요. '이 순간 이후, 모든 것이 영원히 달라질 거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소년은 바다를 향해 달려가며 숨이 가쁠 정도로 벅차오르는 걸 느껴요. 그런데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자 이렇게 적혀 있네요. "그러느라 가장 큰 파도를 보지 못했다. 깜짝 선물처럼 해변에 도착한 파도를." 그림 속 파도는 한없이 잔잔한데 소년은 도대체 무슨 파도를 말하는 걸까요?
바다에 들어가 서 있는 소년에서 시선을 오른쪽으로 옮기면, 해변에 한 소녀가 강아지와 함께 서 있네요.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녀는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곧 사라졌어요. 프랑스 소년으로선 알아듣기 힘든 영어였지만, '에스더 앤더슨'이라는 이름만은 기억했어요. 그날 어떻게 돌아왔는지 소년은 기억조차 없어요. 온통 그 소녀의 모습만 떠오르네요. 소년은 그 애를 만나기 위해 몇 번이고 바다를 다시 찾아갔지만 만날 수가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길에서 울고 있는 소녀를 봤어요. 강아지를 잃어버렸다네요. 소년은 같이 찾아보자며 소녀를 자신의 자전거에 태워 해변으로 향해요. 여름방학이 끝나기 하루 전날이에요. 소녀도 내일이면 영국으로 돌아간대요. 둘은 바다를 바라보다 함께 뛰어들어요. 다행히도 강아지는 삼촌이 찾아주셨고, 둘의 여름방학은 그렇게 끝이 났어요.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이에요. 소년은 물끄러미 창 밖을 보며 생각해요. '이 세상 어딘가에 에스더 앤더슨이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소년은 새로운 곳으로 달려가 지금껏 몰랐던 장소를 발견하기도 하고, 그곳에서 한 소녀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이전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첫사랑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맞이하는 한 소년의 마음속 이야기가 섬세하게 펼쳐지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