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명·청나라 황제들 500년간 생활한 곳… 100만명 동원해 72만㎡로 지었어요

입력 : 2023.05.02 03:30

자금성

중국 베이징에 있는 자금성의 모습. /위키피디아
중국 베이징에 있는 자금성의 모습. /위키피디아
지난 3월 28일 일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별세했습니다. 그는 1987년 개봉한 영화 '마지막 황제'로 아시아계 최초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 영화는 세계 최초로 중국 베이징 중심 자금성에서 촬영했어요.

자금성을 세운 사람은 명나라를 건국한 홍무제의 아들 영락제입니다. 그는 원래 '연왕(燕王)'에 봉해졌어요. 베이징 일대를 책임지는 제후였죠. 그러다 황제가 된 조카를 폐위하고 제위에 올랐죠. 그는 수도를 난징에서 자신의 정치적 배경인 베이징으로 옮기면서 새로운 궁궐 자금성을 기획했어요. 자금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 궁궐 중 가장 규모가 큰 축에 속해요. 동서로 760m, 남북으로 960m에 달하고, 부지 면적은 72만㎡에 달합니다. 11m 높이로 성벽을 쌓았고, 너비 52m, 깊이 6m 해자(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성 주변을 둘러 판 연못)를 갖췄어요. 둘레가 총 4㎞에 이릅니다.

영락제는 자금성을 짓기 위해 중국 각지에서 엄청난 양의 고급 자재를 징발했어요. 중국 남서부 윈난성 밀림에서 수십만 그루의 나무를 베었어요. 채석장에서는 10만명을 투입해 건물 기단부와 조각용으로 쓰일 석재를 확보했죠. 쑤저우에서 생산한 최고급 벽돌 1억장, 다양한 색깔의 유리 기와 2억장 등 수많은 고급 건축 자재가 한곳에 모였어요. 남쪽에서 온 장인 10만명을 투입해 3년 6개월 만에 궁전을 지어 올렸다고 합니다. 자금성을 짓는 데 동원된 총인력은 100만명에 달했어요.

명나라를 밀어낸 청나라도 화려한 자금성을 황제가 머무는 정식 궁궐로 썼어요. 명·청 500년 동안 총 24명의 황제가 생활한 자금성은 중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로 꼽힙니다. 1924년 청나라 마지막 황제 선통제가 쫓겨난 후 자금성에는 수백 년 동안 황제가 모아둔 희귀 고서화와 가구, 장식품이 남았어요. 중일 전쟁이 발발하자 강탈을 막기 위해 자금성 유물 중 옮길 수 있는 것들은 상하이 교회 창고로 가지고 갔어요. 대륙에서 집권한 국민당 정부는 수도 난징에 박물관을 지어 보물을 보관했죠. 그런데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국민당과 공산당 간 내전이 일어났습니다. 국민당을 이끌던 장제스는 패색이 짙어지자 난징에 모은 유물 중 가치 있는 것들만 골라 대만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현재 대만 수도에 있는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이 중국 황실 유물을 대거 소장하게 된 배경입니다.

자금성은 1966년 문화대혁명 때 위기를 겪어요. 당시 마오쩌둥은 자금성을 완전히 밀어버리고 공산당 중앙 당사를 지으려는 계획까지 세웠어요. 저우언라이 총리가 강력히 반대해 다행히 실현되지 않았다고 해요. 1970년대 이후 자금성은 개·보수를 진행했고, 각지에 흩어진 유물을 모아 고궁박물원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금성은 198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어요.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