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바닥 낮춘 버스, 만져서 확인하는 시계… 장애·연령 상관없이 누구나 쓸 수 있죠

입력 : 2023.04.25 03:30

유니버설 디자인

휠체어를 탄 사람도 버스에 탈 수 있도록 계단을 없애고 바닥을 낮춘 저상버스의 모습. /장련성 기자
휠체어를 탄 사람도 버스에 탈 수 있도록 계단을 없애고 바닥을 낮춘 저상버스의 모습. /장련성 기자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에요. 장애인 권리를 보호하는 대표적인 예가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입니다. 장애·연령·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사회 구성원 모두를 배려한 디자인을 뜻해요. 장벽이 없다는 의미에서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디자인'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라고도 부릅니다.

20세기 중반 서구 사회에 변화가 생기면서 유니버설 디자인이 등장했어요. 20세기 초만 해도 모든 디자인과 건축은 건강한 성인 남성에 맞춰졌습니다. 그런데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군인과 부상자 등 많은 사람이 후천적 장애를 갖게 됐어요. 특히 미국에선 베트남 전쟁 이후 장애를 가진 퇴역 군인이 많이 늘어났죠. 더불어 의료 기술이 발전하고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장애인과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급격히 높아졌습니다. 이제 건강한 성인 남성만을 위한 디자인으로는 충분치 않게 된 거죠.

길을 걷다 보면 차도와 보도 사이, 보도와 건물 사이에 직각으로 10~15㎝ 높이 턱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이 매일 부딪히는 거대한 장벽이죠. 이런 곳을 손쉽게 다닐 수 있도록 턱을 없애니 장애인뿐 아니라 유모차를 끄는 엄마, 수레를 미는 노동자, 심지어 아픈 곳이 없는 사람도 모두 혜택을 입었어요. 버스 계단을 없애고 바닥을 낮춘 저상 버스도 비슷한 경우예요.

고속도로 휴게소나 공공 화장실에 있는 다목적 화장실도 유니버설 디자인의 사례로 꼽혀요. 휠체어가 들락날락할 수 있게 공간이 넓고 터치로 여는 전자 문, 아이를 눕힐 수 있는 구조물 등이 있어 모두에게 편리하죠.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최근 만져서 시간을 알 수 있는 시계가 나왔어요. 옆면과 앞면에 파인 홈을 따라 움직이는 구슬 두 개가 시계의 시침과 분침 역할을 대신하죠. 구슬과 돋을새김한 시간 구분선을 손끝으로 만져서 시간을 알 수 있답니다. 색약자와 비색약자가 함께 볼 수 있는 서울 지하철 노선도도 있어요. 호선마다 외곽선을 추가하고, 환승역에서 몇 호선으로 갈아탈 수 있는지 숫자로 친절하게 정리했죠.

저시력, 노안 등 시력 약자도 작은 글씨를 잘 인식할 수 있도록 한 유니버설 디자인 폰트도 있어요. 카드나 보험 약관, 식품 라벨처럼 글씨가 빼곡해도 읽기 수월한 폰트죠. 휠체어를 타는 사람도 입을 수 있는 격식 있는 옷을 만드는 기업도 있어요. 단추를 자석으로 대체하고, 바지 양쪽에 사이드 지퍼를 달아서 보조 기구를 써도 스스로 입고 벗을 수 있게 만들었어요.

전 세계 장애인은 13억명으로 중국 인구에 육박합니다. 앞으로 초고령화 시대를 맞이하면 유니버설 디자인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답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