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 이야기] 출세에 눈먼 소인국, 이상적인 대인국… 18세기 영국 풍자해 금서되기도 했죠
입력 : 2023.04.18 03:30
걸리버 여행기
- ▲ 조너선 스위프트가 쓴 ‘걸리버 여행기’ 초판. /위키피디아
아일랜드 출신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가 1726년 발표한 '걸리버 여행기'는 18세기 영국의 정치 현실을 신랄하게 꼬집어 '풍자문학의 고전'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이에요. 대인국과 소인국 이야기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동화로 각색되면서 흔히 아동소설 혹은 모험소설로 알려져 있는데요. 사실 스위프트가 살던 시대를 신랄하게 묘사해 일부 내용은 삭제되고, 심지어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던 작품이에요.
영국 중산층 출신인 걸리버는 약 16년 7개월 동안 보통 사람들은 가보지 못한 나라들을 여행해요. 소인국(小人國), 대인국(大人國), 공중국(空中國), 마인국(馬人國)을 차례로 여행하죠. 소인국 '릴리퍼트'의 정치가들은 흔히 말하는 '줄타기'를 잘하면 출세할 수 있어요. 당시 영국 왕이 조지 1세였는데, 많은 귀족 정치가가 그의 눈에 들기 위해 온갖 아첨을 일삼았던 일을 풍자했죠. 대인국 '브롭딩내그'에서 걸리버는 구경거리가 됐어요. 소인국과 달리 대인국은 왕을 중심으로 정치·군대·농업·가정이 제 기능을 하는 이상국가였죠. 오히려 스위프트는 왕에게 전쟁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걸리버가 낡은 시대의 생각을 갖고 있다고 비판해요.
인간의 위선과 야만에 대한 풍자는 3부 공중국과 4부 마인국에서 훨씬 선명하게 드러나요. 공중국 '라퓨타'는 육지 '발니바비' 위에 떠 있는, 거대한 비행접시 같은 섬이에요. 후대 평론가들은 라퓨타는 스스로 이상적인 국가라고 믿는 영국을, 발니바비는 영국 지배하에서 고통받는 아일랜드를 상징한다고 해석했어요. 라퓨타 사람들은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었고, 한쪽 눈은 속으로, 다른 쪽 눈은 하늘을 향해 있어요. 음악·미술 등 차원 높은 예술과 이상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식민 지배와 착취를 일삼는다는 풍자인 셈이죠.
'걸리버 여행기'의 백미는 4장 마인국 '휴이넘'이에요. 이곳 주민인 말들은 '질서 정연하고 합리적'이며 '지성이 예리하고 총명'한, 말 그대로 완전한 존재예요. 하지만 마인국에도 문제는 있었어요. 온갖 추잡한 일을 일삼는 '야후'라는 존재들 때문이죠. 작가는 "이 혐오스러운 짐승이 인간의 모습을 완전히 갖추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 내가 받은 충격과 공포감은 이루 형용할 수가 없었다"라고 말해요. 탐욕스러운 인간의 이중성, 그리고 식민 지배와 착취에 거리낌이 없는 국가에 대한 풍자를 담은 '걸리버 여행기'는 우리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