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식물 이야기] 독성 있는 화학물질 만들어… 애벌레가 먹어 치우는 것 막아줘요

입력 : 2023.04.17 03:30

참나무의 잎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참나무속 중 하나인 떡갈나무의 잎. /위키피디아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참나무속 중 하나인 떡갈나무의 잎. /위키피디아
이즈음이면 산에선 연녹색 새잎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낙엽이 지고 봄에 새로운 잎이 나는 대표적 낙엽활엽수로는 참나무속(屬) 나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참나무속 낙엽활엽수로는 신갈나무·졸참나무·갈참나무·떡갈나무·굴참나무·상수리나무 여섯 종이 있습니다. 이렇게 매년 잎이 새로 나는 나무들은 많은 잎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숲속 생태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죠.

봄이 되고 연녹색 잎이 나기 시작하면, 겨울이 되기 전 낳아 두었던 알에서 곤충이 여러 종류 깨어납니다. 곤충은 부드럽고 먹기 좋은 새잎을 먹고 자라지요. 우리나라 숲속에서 가장 비율이 높은 참나무속 나무들은 먹여 살리는 곤충 수도 가장 많은데요. 한 연구에서는 굴참나무와 졸참나무에서 무려 나비와 나방 126종의 애벌레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참나무 또한 새로 만들어낸 잎을 모두 잃을 수는 없지요. 그래서 애벌레가 잎을 다 먹어 치우지 않도록 서둘러 잎을 변화시킵니다. 참나무 종류는 곤충이 잎을 다 먹지 못하도록 곤충에게 독성이 있는 화학물질을 만들어 잎 안에 저장합니다. 그 중 하나가 타닌(tannin)입니다.

타닌은 애벌레의 성장 속도를 늦추고 바이러스 같은 질병에 취약하게 만들어요. 애벌레가 나뭇잎을 먹어 없애는 것을 막아 줍니다. 타닌 말고도, 참나무 종류는 나뭇잎 안의 세포벽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애벌레가 먹기 힘든 뻣뻣한 털을 내기도 합니다.

새로 나온 나뭇잎이 자기방어를 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몇 주밖에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이 기간 애벌레는 자라서 번데기가 돼야 껍질을 벗고 나비나 나방이 돼 다시 알을 낳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른 봄 숲에서는 부드럽고 통통한 애벌레들이 나뭇잎을 먹고 자라는 경쟁을 합니다.

애벌레들은 숲에서 둥지를 트는 새들에게 중요한 먹이가 됩니다. 애벌레는 참나무가 잎을 내는 시기에 맞춰 알에서 깨어나고, 새들은 새끼가 애벌레를 먹어야 하는 시기에 맞춰 둥지를 틀고 알을 낳습니다. 이렇게 생태계에서 계절에 따라 생물이 주기적으로 변화하는 시기를 '생물계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기후변화로 벚꽃이 빨리 피고 산에 있는 나무도 잎이 빨리 나고 있습니다. 참나무의 생물계절은 온도에 따라 빨리 변하고 있지만, 새와 곤충의 생물계절은 나뭇잎이 자라는 시기에 맞춰 변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태계에서 생물계절이 서로 맞지 않아, 깨어난 애벌레나 어린 새를 위한 먹이가 부족해지는 현상을 '생물계절 불일치'라고 합니다.


김한규 위스콘신대 박사 후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