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대사 없는 장면 넘기거나 요약본 보면 작품 감상이 아닌 '콘텐츠 소비'예요

입력 : 2023.04.17 03:30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재밌다, 이 책!] 대사 없는 장면 넘기거나 요약본 보면 작품 감상이 아닌 '콘텐츠 소비'예요
이나다 도요시 지음 | 황미숙 옮김 | 출판사 현대지성 | 가격 1만5500원

책을 소개하기 전에 질문 하나 할게요. 다음 중 몇 가지나 해당하나요?

①대화에 끼기 위해 인기 있는 콘텐츠를 본다

②대사 없는 일상적인 장면은 건너뛴다.

③1시간짜리 드라마를 10분 요약 영상으로 해치운다.

④영화관에 가기 전 결말을 알아본다.

⑤인터넷에 올라온 해석을 찾아보며 콘텐츠를 본다.

⑥처음 볼 땐 빨리 감기로, 재미있으면 보통 속도로 다시 본다.

⑦원작을 최대한 각색 없이 그대로 옮겨야 본다.

⑧악당은 사절. 착한 캐릭터만 나오길 원한다.


이 중 6개 이상에 해당한다면 '영화를 감상'하지 않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거예요. 이 책은 빨리 감기, 건너뛰기, 요약본 보기를 통해 우리의 문화 소비 습관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살펴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시대를 사는 우리가 영화를 보는 방식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지요.

저자 이나다 도요시가 일본 아오야마 가쿠인대학에서 2~4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 일이에요. 학생들의 콘텐츠 시청 습관을 조사했더니 87.6%가 '빨리 감기' 시청 경험이 있다고 답했어요. 놀란 저자는 콘텐츠 제작자,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 마케터 등 더 많은 사람을 인터뷰해 이 책을 쓰게 됐어요.

요즘 사람들은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몇 시간씩 앉아서 볼 시간이 없다고 해요. 그런데 봐야 할 작품은 너무 많지요. 저자의 말처럼 "역사상 가장 많은 영상 작품을, 가장 값싸게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되도록 짧은 시간에 재미있게 즐길 거리를 찾아요. 빨리 감아 보고, 건너뛰며 보고, 요약본을 찾아보면서요.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더는 영화를 '작품'이라고 부르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어요. 그 대신 '콘텐츠'라는 말을 사용하지요. 저자는 이제는 '작품을 감상한다'는 말보다 '콘텐츠를 소비한다'라고 하는 것이 더 익숙해진 시대라고 말해요.

이런 시대의 콘텐츠 소비 습관으로는 우선 '반복해서 보기'가 있어요. 새로운 콘텐츠 내용을 따라가려 생각하는 것이 귀찮고 피곤하다는 거예요. 차라리 잘 아는 작품을 반복해서 보는 걸 즐기지요. 또 시간 낭비를 하고 싶어하지 않아요. 효율의 시대에 콘텐츠 소비에서도 실패하지 않으려 요약 영상을 보거나 믿을 만한 지인의 추천을 받지요. 티켓 값도 워낙 비싸 확실히 재미있는 작품만 극장에서 보고 싶어 해요. 요즘 문화 트렌드와 미디어 미래에 대해 통찰력을 얻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해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