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한국식 오페라 '창극' 유행… 흥부 아내 이혼소송도 무대에

입력 : 2023.04.03 03:30

'흥보 마누라'와 '정년이'

창극 ‘흥보 마누라 이혼소송 사건’의 공연 장면. /국립정동극장
창극 ‘흥보 마누라 이혼소송 사건’의 공연 장면. /국립정동극장
최근 창극(唱劇)의 인기가 뜨거운데요. 판소리가 창자(唱者)와 고수(鼓手) 두 사람이 소리를 중심으로 펼쳐놓는 음악 위주의 일인극이라면, 창극은 다채로운 배경을 무대로 여러 창자가 등장인물을 맡는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창극은 서양의 종합예술 '오페라'에 비견되는, 연주에 연기·무용을 더한 풍성한 볼거리 중심의 공연이죠. 그래서 전통 판소리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관객들까지 공연장으로 불러들일 수 있어요. 그럼 최근 공연됐거나 공연 예정인 '창극' 두 편을 살펴볼까요?

흥부 아내, 이혼소송 제기하다

우리는 '흥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흥부라 하면, 조선에서 제일가는 착한 남자 아닌가요. 못되고 심술 맞은 형 놀부에게 쫓겨나 온갖 고충을 겪다가,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준 선행으로 제비가 물고 온 박씨에서 열린 박을 타보니 온갖 금은보화가 쏟아져 복을 받은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거짓말에 조작된 것이라고 나서는 한 사람이 있으니, 기가 막히게도 흥부의 아내입니다. 창극 '흥보 마누라 이혼소송 사건'(4월 11~19일·국립정동극장)에서는 흥부의 뒤에 가려졌던 흥부의 아내가 전면에 등장합니다. 조선 시대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 중심 서사로 쓰인 이야기에 문제 제기를 하지요.

사실 '흥보가'는 판소리 중에서도 해학적이면서도 익살스러운 아니리(판소리에서 창을 하는 중간에 가락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하듯 엮어나가는 사설)가 돋보이는 작품이에요. 흥보가는 조선 중기부터 불리기 시작했는데, 정조 때의 권삼득과 순조 때의 염계달, 철종~고종 때 문석준 명창 등이 유명합니다.

새로 각색한 창극에서도 해학과 익살이 그에 못지않아요. 이번 극에서는 관객이 배심원으로 참석하는 '법정'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흥부의 아내가 내세우는 이혼소송 사유는 세 가지죠. 첫째 흥부가 분수도 모르고 양반 허세를 부리는 점, 둘째 가장으로서 집안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점, 셋째 온갖 거짓으로 가정을 지키지 않은 점이에요.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에서 얻은 보물로 부자가 된 흥부는 이혼소송을 위해 변호사까지 대동하지만, 흥부의 아내는 조선 천지에 자신의 변호를 맡을 남정네 변호사가 없으니 스스로를 변호하겠다며 혈혈단신 법정에 섭니다. 저 세 가지 이혼 사유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지요. 흥부의 아내가 이혼을 위해 제출하는 증거는 다름 아닌 판소리 흥보가의 한 대목이에요. 이를 보충하기 위해 과거 생활 동영상도 내밉니다. 이렇게 원전 판소리의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극 중 인물이 새롭게 들려주는 가상의 이야기가 더해지며 흥겨운 한 마당이 펼쳐집니다.

여성 배우만 등장하는 창극, 여성국극

여기, 풍성해진 창극의 소재를 보여주는 무대가 있습니다. 요즘 창극은 판소리뿐 아니라 그리스 비극이나 외국 설화를 소재로 가져오기도 하는데요. 최근에는 인기 웹툰 '정년이' 역시 창극으로 만들어졌어요. 지난달 국립극장에 올랐던 창극 '정년이'는 1950년대에 전성기를 맞은 '여성국극(女性國劇)'을 소재로 하고 있어요. 여성국극은 이름 그대로 여성이 주체인 창극을 의미해요. 모든 등장인물을 여성 배우가 맡아서 무대에 서지요.

'춘향전'의 이몽룡, '자명고'의 호동왕자 등 우리도 아는 남성 주인공뿐 아니라 정말로 '모든' 배역을 여성이 맡습니다. 여성국극의 당시 인기란 정말 대단했다고 해요. '임춘앵 전기(傳記)'에 남은 기록을 한번 볼까요. "임춘앵이 손만 한번 들어도 탄성이 터져 나왔고, 발걸음을 한 번만 내디뎌도 환호성을 올렸다." 임춘앵은 1950년대 여성국극을 대표하는 인기 배우였어요. 지방에서 공연이 열리면 인근 도시 관객들까지 몰려들어 통행이 어려울 지경이었죠. 당시 또 다른 여성국극 인기 배우였던 조금앵은 팬이었던 여학생의 간곡한 청으로 가상 결혼식까지 올렸다고 해요.

사실, 여성국극의 태동은 19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관청에 딸린 기생 제도가 폐지되면서 시작됐어요. 이때부터는 가사와 시조·판소리까지 능했던 기생들이 순수 명창으로 활동하게 됐거든요. 이 여성들은 당시 남자들만 대접받던 국악 판에 반기를 들고 1948년 '여성국악동호회'를 만들었어요. '옥중화(춘향전)' '해님 달님' '황금 돼지' 등의 작품이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여성국극이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어려웠던 시대에 가정일에만 묶여 있던 여성들은 여성국극의 등장으로 해방구를 찾은 듯했죠. 하지만 1960년대 들어 영화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여성국극의 전성기도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리고 1962년 국립극장 전속 '국립국극단'이 창단되면서 여성들만 무대에 서는 여성국극은 사라지게 되지요. 이제 '정년이'처럼 다시 여성이 주인공이 돼 여성의 이야기를 쓰는 새로운 창극의 시대가 열렸으니,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창극 ‘흥보 마누라 이혼소송 사건’의 공연 장면. /국립정동극장
창극 ‘흥보 마누라 이혼소송 사건’의 공연 장면. /국립정동극장
창극 ‘흥보 마누라 이혼소송 사건’의 공연 장면. /국립정동극장
창극 ‘흥보 마누라 이혼소송 사건’의 공연 장면. /국립정동극장
창극 ‘정년이’ 포스터. /국립극장
창극 ‘정년이’ 포스터. /국립극장
창극 ‘정년이’의 공연 장면. /국립창극단
창극 ‘정년이’의 공연 장면. /국립창극단
창극 ‘정년이’의 공연 장면. /국립창극단
창극 ‘정년이’의 공연 장면. /국립창극단
안영 기자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