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 이야기] '패러다임' 소개해 유행시킨 책… 천동설 대체한 지동설 예로 들어
입력 : 2023.03.28 04:31
과학혁명의 구조
- ▲ ‘과학혁명의 구조’ 영문판 초판본. /위키피디아
미국의 과학사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토머스 새뮤얼 쿤(1922 ~1996)이 1962년 발표한 '과학혁명의 구조'는 "20세기 과학철학의 고전 중 하나"로 평가받는 책이에요. 이 책이 출간되던 시기에는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말을 과학계 일부에서만 사용했어요. 하지만 이 책이 출간된 이후로 '패러다임'이라는 말은 널리 유명해졌습니다. 패러다임은 '세계관'이나 '시대의 징후' 같은 의미를 갖게 됐고, '패러다임의 전환'이란 표현도 일상에서 자주 쓰게 됐지요. 그것만으로도 '과학혁명의 구조'가 남긴 자취는 뚜렷합니다.
어느 시대에나 정상과학(定常科學)이 있어요. 정상과학이란 '과학자들이 통상적으로 펼치는 안정된 과학 활동'을 뜻하는데, 더 쉽게 말하면 '그 시대에 통하는 과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쿤에 따르면 과학자 공동체는 당대의 패러다임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그에 따라 다양한 변칙 현상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이 출현하지요. 당대의 패러다임은 항상 위기에 부딪히게 마련입니다. 위기를 맞은 패러다임은 강하게 저항하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을 막기 역부족일 때가 허다하죠.
가장 쉬운 예가 천동설(天動說)과 지동설(地動說)이에요. 중세 사람들은 '모든 천체가 지구를 돌고 있다'는 내용의 천동설을 굳게 믿었어요. 중세의 종교적 세계관에 따르면 세상의 중심은 지구였거든요. 그 당시 정상과학은 천동설이었던 거죠. 하지만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 등에 의해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지동설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대두하기 시작했어요. 천동설은 당시 세상을 지배하는 정상과학이었지만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는 모순들이 하나둘 쌓이고 있었고, 그 누적된 틈에 지동설이 균열을 낸 것이죠. 당시 권력자들은 종교적 탄압까지 동원하며 정상과학(천동설)을 지키려 했어요. 하지만 지동설이란 패러다임이 새로운 정상과학이 되면서, 결과적으로 과학혁명도 일어나게 된 것이죠. 우리에게는 지동설이 아주 익숙한 세계관이지만, 16세기 후반에는 혁명과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쿤은 과학자가 어떤 패러다임을 추구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주장했어요.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같은 현상에서도 전혀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죠. 패러다임은 그만큼 힘이 세다고 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