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 이야기] 돈 벌어 두 딸 허영 채워줬지만 버려져… 19세기 물질만능주의 풍조 비판했어요
입력 : 2023.03.14 03:30
고리오 영감
- ▲ ‘고리오 영감’ 초판 표지(1835). /위키피디아
'사실주의 문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프랑스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가 1835년 발표한 '고리오 영감'은 "19세기 파리의 인간 군상을 그려낸 사실주의 문학의 교과서"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에요. 발자크는 인간과 사회를 면밀하게 관찰했고 그걸 비판적으로 기록하고자 했는데, 100여 편의 장·단편 중 특히 '고리오 영감'에는 19세기 초반 프랑스 사회의 다양한 계층 사람들이 등장하지요.
프랑스 남부 시골 귀족의 아들인 외젠 드 라스티냐크는 파리 주류 사회로 들어가려는 욕망으로 가득한 청년이에요. 법률을 공부해 법률가가 될 생각으로 상경했지만, 먼 친척인 보세앙 자작 부인의 연줄을 통해 사교계 총아(寵兒)로 떠오르는 게 빠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그런 라스티냐크의 눈에 들어온 사람이 고리오 영감이었어요. 라스티냐크와 고리오 영감 등이 함께 생활하는 곳은 파리 외곽의 허름한 보케 하숙이었어요. 고리오 영감은 평민이었지만 밀가루 장사로 막대한 돈을 벌었어요. 하지만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그 슬픔을 잊으려는 듯 두 딸을 '금이야 옥이야' 키워요.
그래서일까요, 두 딸의 욕심과 사치도 남달랐어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재산 덕에 큰딸은 백작 부인이 되었고, 작은딸은 은행가와 결혼해 더 큰 부자가 되었어요. 하지만 끝없는 사치 때문에 돈은 항상 모자랐고, 그때마다 아버지에게 달려갔어요. 고리오 영감은 마지막 남은 재산인 연금마저 털어서 두 딸에게 보냈지만 삶의 마지막 순간에 딸들은 옆에 없었어요.
19세기 초반의 프랑스는 정치적으로는 혁명과 왕정 복고 등이 반복되는 혼란기였어요. 정치적 상황보다 혼란스러운 것은 경제적 상황이었어요. 이미 자본주의라는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었던 거죠. 고리오 영감은 그 혼란의 틈에서 사업 수완을 발휘해 성공한, 요즘 말로 벼락부자였어요.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고리오 영감의 두 딸과 대개의 등장인물은 물질 만능 세태의 반영인 셈이에요.
흥미로운 것은 라스티냐크의 이후 행동이에요. 고리오 영감의 쓸쓸한 죽음을 경험한 그는 하나둘 세상 물정을 알게 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요. 고리오 영감을 묻은 묘지 언덕에서 파리를 내려다보며 그는 "자, 이제 파리와 나, 우리 둘의 대결이다"라고 소리쳐요. 출세주의자의 단면을 보여줬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어떤 평론가는 허위에 찬 세상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라고 말하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