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2차 대전 폐허에서 화해의 상징으로… 세계 20여 국의 도움받아 복원했죠

입력 : 2023.02.21 03:30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
지난 2월 14일은 밸런타인데이였어요. 로마 시대 군인 혼인을 집례했다가 순교한 성 발렌티누스를 기념하는 축일(祝日)로 초콜릿 등 선물을 주고받는 날로 유명하죠. 하지만 독일 드레스덴에는 잊지 못할 끔찍한 날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2월 13일부터 사흘간 무차별 폭격으로 도시의 90%가 파괴됐거든요. '독일의 피렌체'라 불리며 18세기 바로크 문화가 꽃핀 드레스덴의 유명 건축물은 모조리 피해를 봤어요. 도시의 상징이던 '드레스덴 성모교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드레스덴 성모교회는 11세기 가톨릭 성당으로 지었다가 16세기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개신교 계열인 루터 교회로 바뀌었어요. 이후 1743년 화려한 바로크 양식으로 다시 지어졌죠. 성모교회의 자랑은 마치 종을 닮은 듯 우아한 모습의 돔인데요. 67m 높이 거대한 돔을 8개 가느다란 지지대가 지탱하는 구조는 당시 최신식 공법이었어요. 하지만 성모교회는 1945년 드레스덴 폭격 때 1000도가 넘는 고온에 휩싸이면서 검게 그을린 돌무더기 폐허로 변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직후 드레스덴 시민들은 폐허를 뒤져 부서지지 않은 건물 조각마다 번호를 매겼어요. 복구 작업에 대비한 거죠. 조각 수만 8500여 개에 달했다고 해요. 하지만 패전국이 된 독일이 1949년 서독과 동독으로 분단되면서 드레스덴은 동독 영토가 됩니다. 동독 정부는 폐허가 된 교회를 연합군의 만행을 보여주는 상징물로 이용하기로 했어요. 1966년 공식적으로 반전(反戰) 유적으로 지정하며 엉망인 모습 그대로 내버려뒀죠. 폭격 후 45년이 지난 1990년, 독일이 통일되자 드레스덴 시민들은 성모교회 복원을 청원했고 드레스덴 시의회는 1992년 재건을 승인했어요.

건축가 에버하르트 부르거가 이끄는 재건팀은 초기 설계도를 바탕으로 1993년부터 공사에 들어갑니다. 재건에 사용하는 자재는 될 수 있으면 폐허 속 잔해를 재사용하려고 노력했어요. 실제 드레스덴 시민이 보관하던 잔해 중 3800여 개가 건물에 다시 쓰였어요. 교회의 옛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 증언과 수천 장의 옛날 사진, 교회 건설 때 사용한 재료 주문서 등도 큰 힘이 됐죠.

성모교회 재건에는 모두 하나가 되었습니다. 재건 비용 1억8000만유로 중 1억1500만유로가 세계 20여 국 시민과 민간단체·기업 기부금이었죠. 독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드레스덴 외곽으로 피신했다가 폭격을 목격한 미국 생물학자 귄터 블로벨은 199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으며 상금 100만달러를 재건 활동에 쾌척했습니다. 특히 드레스덴 폭격의 장본인 영국에서는 500만파운드를 마련했고, 돔 지붕 꼭대기 종루(鐘樓) 금박 십자가를 기부했어요.

2005년 10월 30일, 성모교회는 예정보다 1년 앞서 완공됐습니다. 평화와 화해의 힘으로 부활한 성모교회는 복원 후 3년간 700만명이 다녀가며 다시금 드레스덴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전쟁으로 파괴된 문화재를 복원한 기념비적 사례로 꼽히고 있어요.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