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아이가 느끼는 봄·여름·가을·겨울 냄새… 책장 넘길 때마다 어디선가 피어올라요

입력 : 2023.02.16 03:30
[재밌다, 이 책!] 아이가 느끼는 봄·여름·가을·겨울 냄새… 책장 넘길 때마다 어디선가 피어올라요
계절의 냄새

양양 글·그림|출판사 노란상상|가격 1만3000원

이 책은 제목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네요. 계절에 냄새가 있다고요? 보통 '계절'이라고 하면, 풍경을 먼저 떠올리게 마련이죠. 알록달록 꽃이 피는 봄, 나무들이 우거지는 여름, 낙엽이 지는 가을,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처럼 말이에요. 생각해보면 계절마다 각기 다른 냄새가 날 것 같기도 하네요.

책을 펼치면 작은 아이가 아빠를 올려다보며 손에 든 무언가를 내밀고 있어요. 이제 막 퇴근하셨나 봐요. 아빠는 외투도 벗지 않은 채로 다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여 아이를 바라봅니다. 그러곤 이렇게 물어요. "냄새를 모았다고?" 그러자 아이가 대답해요. "응. 계절의 냄새.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냄새." 놀랍네요. 아이는 계절의 냄새를 대체 어떻게 모았을까요? 아빠도 궁금하셨나 봐요. "그럼 같이 한번 맡아 볼까?" 하고 말씀하시네요.

"봄에는 어떤 냄새를 모았니?" 아빠가 묻자, 아이는 놀라운 대답을 하네요. "봄에는 시작의 냄새를 모았어. 바스락거리는 등굣길의 냄새. 일렁이는 마음처럼 흩날리는 꽃잎의 냄새. 그리고 새 친구에게 처음 인사 건네는 옅은 미소의 냄새." 아이는 꽃이 피어 있는 길을 지나 학교로 가는 동안 만난 풍경을 냄새로 기억하며 표현하고 있어요.

아빠는 다음 계절의 냄새도 궁금해졌어요. "여름에는 어떤 냄새를 모았어?"라고 묻자, 아이는 이번엔 이렇게 대답해요. "기억의 냄새를 모았어. 호기심 품은 고양이의 발자국 냄새와 뒤따르던 불빛 안에 떠돌던 먼지 냄새. 할아버지네 마당 한구석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밤공기의 냄새. 알싸한 여름의 냄새야." 아니, '고양이의 발자국 냄새'라니요. 세상에 그런 냄새가 있을까 싶네요. 하지만 아이가 고양이의 발자국을 볼 때마다 같은 냄새를 떠올린다면, 남들이 그런 냄새는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어요. 세상에는 나만이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있잖아요. 가령 엄마 품에서 나는 따뜻한 냄새가 그렇죠.

'바람의 냄새'는 아이가 가을을 간직한 냄새예요. 어느새 차가워진 저녁노을의 냄새, 높기만 한 하늘 아래에서 낙엽처럼 말라 부서지는 상처의 냄새가 아이에겐 가을의 냄새였어요. 가을의 어느 날 아이는 친구와 싸웠고, 그로 인해 마음이 아팠거든요. 이제 겨울의 냄새 하나만 남았네요. 아이는 겨울 냄새는 아직 모으는 중이라고 말해요. 포근한 담요 냄새와 설탕처럼 달콤하게 내리는 늦은 밤의 눈송이 냄새는 겨울의 냄새로 담아두었어요. 하지만 아이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겨울의 냄새 하나가 남아 있다고 하네요. 과연 그것은 어떤 냄새일까요? 이 대목에서 독자들은 각자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냄새가 무엇인지 떠올려 보고 싶어질 거예요. 책 속의 아이는 "변함없이 날 안아주는 아빠의 코트 냄새"라고 알려주지만 말이에요.

시적인 문장과 서정적이고도 부드러운 수채화가 책 속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어요. 책장을 넘길 때마다 향기로운 냄새가 피어오를 듯한, 매우 아름다운 그림책입니다.
김성신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