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 이야기] "양반이 상업해야 조선 개혁할 수 있다" 청나라 다녀온 박제가가 쓴 보고서죠
입력 : 2023.02.14 03:30
북학의(北學議)
- ▲ 조선 북학(北學) 사상의 정수를 담고 있는 책 '북학의'. /한국학중앙연구원
18세기 북학파(北學派)의 거장 박제가(1750~1805)가 펴낸 '북학의(北學議)'는 "조선의 개혁·개방을 외친 북학 사상의 정수"라고 평가받는 책이에요. '북학의'란 쉽게 말하면 '북쪽을 배우자는 논의'인데, 여기서 북학은 북쪽에 있는 나라, 즉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뜻합니다. 박제가는 1778년 사신단의 일원으로 청나라 연경(燕京·지금의 베이징)에 다녀왔는데, 약 3개월에 걸쳐 작성한 보고서를 정조에게 올려요. 그 보고서가 바로 '북학의'죠.
당시 청나라는 많은 나라와 교역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여 국가정책 등에 반영하면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어요. 박제가는 이런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배워 낙후된 조선을 개혁하고 부국강병(富國强兵)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해요.
박제가가 주장한 부국강병은 단순히 나라의 부강함을 의미하지 않아요. 그 부강함은 백성의 풍요로운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는 '북학의' 내편(內編)에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기구와 시설에 대한 개혁을 주장하는데, 이는 백성의 불안한 생활에 대한 깊은 연민에서 비롯된 거죠. 외편(外編)에서는 농경 기술을 개선하고 상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요. 이를 통한 생산력 증대만이 백성의 삶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에요.
박제가는 상공업 발전과 관련한 독특한 주장 하나를 곁들여요. 바로 사대부들이 상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거예요. 조선시대는 직업을 기준으로 신분을 구분하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시대였어요. 상인(商)은 학자(士), 농민(農), 장인(工)보다 못한, 계급제 사회의 말단에 있는 존재였어요. 그렇게 신분의 구분이 확실한 시대에 박제가는 양반들이 상업에 종사해야만 한다고 주장해요. 할 일 없이 서책이나 읽으며 소일하는 양반들이 생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주장은 당시로써는 파격 중 파격이었어요. 박제가는 "무릇 놀고먹는 자들은 나라의 큰 좀벌레"라는 말로 강도 높게 양반들의 행태를 비판하죠.
백성의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고 도덕을 말하는 것은 허울 좋은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박제가는 책 곳곳에서 밝히고 있어요. 그만큼 조선은 개혁할 부분이 많다는 뜻이죠. '북학의'는 단순히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배우자는 책이 아니에요. 선진 문물로 사회를 혁신할 수 있다는, 한 치 앞선 사회사상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