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기후 위기는 문화와 상상력의 위기… 인간 생존에 대해 함께 상상해 봐요
입력 : 2023.02.13 03:30
대혼란의 시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사회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인도 출신 소설가 아미타브 고시가 환경 불평등에 관해 쓴 책이에요. 그는 인도 최고 문학상 샤히타아카데미상과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상을 받았는데요. 우리와도 인연이 있어요. 2018년 제8회 박경리 문학상 최종 후보였거든요. 박경리 문학상은 국내에선 드문 세계 문학상이기도 해요.
제목인 '대혼란의 시대'는 기후 위기인 오늘날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거예요. "우리 시대의 '문화'가 지구온난화에 맞서는 데 실패했다"며 기후변화의 규모와 위력을 파악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을 문학, 역사, 그리고 정치 차원에서 탐구해요.
저자는 문화가 전쟁이나 재난, 위기를 많이 다뤘는데 기후변화에는 비교적 소극적으로 반응했다고 봐요. 일단 장르로서 소설이 등장한 근대에는 기후가 안정적이어서 지금 같은 이상기후를 상상하기 어려웠던 측면이 있고, 대중문화가 주로 욕망을 묘사하고 추구하는 데 치중하다 보니 그로 인해 일어나는 파괴 현상에 대해선 무관심했다고 분석하죠. 더구나 근대 이후엔 인간 중심적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게 주를 이루다 보니 자연이나 동식물은 소외되기 일쑤였기도 하고요.
저자는 1978년 3월 델리 북부에서 우연히 돌풍을 겪었는데 알고 보니 인도기상청이 관측을 시작한 이래 최초로 기록된 토네이도를 눈으로 본 것이었어요. 그는 말해요. "소설이라는 프로젝트가 굳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재생하는 식이 될 필요는 없다. 픽션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가정법으로 세상에 접근하는 것, 세상을 마치 그것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인 양(as if) 그려내는 노력이다… 기후 위기는 세계를 오직 있는 그대로만 받아들이면 끝내 집단적 자멸로 치닫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똑똑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대신 세계가 어떻게 될 가능성이 있는지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이 갖는 장점 중 하나는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 위기를 비(非)서구적 관점에서 담았다는 점이에요. 기후변화 얘기는 주로 유럽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아시아는 수동적으로 따라야 하는 처지에 자주 놓여요. 서구 유럽에선 아시아가 급속하게 산업화되면서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걸 강조하지만, 기후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시기는 1930년대까지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어요. 유럽 국가는 대부분 이미 잘살고 있지만 이제 잘살려고 노력하는 아시아 국가들이 기후변화를 위해 경제성장을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는 부당하다는 게 저자 주장이기도 하죠.
이 책은 여러 방면에서 기후 위기를 상상할 수 있게 도와요. 환경 생태 분야의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지음)' 같아요. 그동안 비슷비슷했던 기후 위기 책에 질렸다면 이 책은 신선하고 독창적으로 다가올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