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러시아 옛 별장과 닮은 집 짓고 향수 짙은 걸작 만들었죠

입력 : 2023.02.06 03:30

라흐마니노프의 별장들

①그랜드피아노 앞에 앉은 라흐마니노프. ②라흐마니노프가 젊은 시절 여름마다 방문해 작품을 썼던 이바놉카 별장. ③라흐마니노프가 후기 작품을 썼던 스위스의 호숫가 마을 헤르텐슈타인. /위키피디아
①그랜드피아노 앞에 앉은 라흐마니노프. ②라흐마니노프가 젊은 시절 여름마다 방문해 작품을 썼던 이바놉카 별장. ③라흐마니노프가 후기 작품을 썼던 스위스의 호숫가 마을 헤르텐슈타인. /위키피디아
2023년은 러시아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태어난 지 15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의 작품은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와 격정적인 악상(樂想)으로 인기가 높죠. 또한 뛰어난 피아니스트였기에 특히 피아노 분야에서 걸작이 많습니다. 1873년 태어난 라흐마니노프는 같은 세대의 러시아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을 겪어야 했고, 이를 계기로 조국을 떠나 활동했죠.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생의 마지막까지 돌아가지 못했던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는 그래서인지 어느 곡이든 짙은 향수(鄕愁)가 배어 있습니다. 러시아를 떠난 후 그는 작곡하기 위해 예전에 즐겨 찾던 별장과 흡사한 집을 지어 그곳에 머물면서 향수를 달랬죠. 오늘은 라흐마니노프의 주옥같은 명곡의 산실(産室)이 된 장소 두 곳과 관련된 이야기를 알아보겠습니다.

이바놉카, 첫 30여 년 영감의 산실

러시아에서 활동할 때 라흐마니노프에게 많은 영감을 제공해줬던 장소는 이바놉카의 별장이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약 600㎞ 떨어져 있는 이바놉카는 러시아 탐보프주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마을이죠. 원래 그의 사촌인 사틴 집안이 소유했던 이 집을 라흐마니노프는 1890년 처음 방문했고, 그 후 1917년까지 매해 여름 찾아와 작품을 썼습니다.

이곳은 장미가 가득 핀 정원과 넓은 들판, 멀리서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와 주변을 둘러싼 숲 등이 그림처럼 아름다워 젊은 라흐마니노프의 창작열을 불러일으켰죠. 그는 이 집에 있는 방 중에서 햇볕이 잘 들지 않고 어두운 방을 골라 그곳에서 강한 집중력으로 작곡했어요. 여기서 구상하거나 완성한 작품 대부분이 라흐마니노프의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번호 1인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시작도 이바놉카에서였고, 교향곡 2번 작품번호 27은 그가 독일 드레스덴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3년의 기간 여름휴가지였던 이바놉카에서 집중적으로 만들어 1907년 완성했습니다. 작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임윤찬의 연주로 우리에게 친숙해진 피아노 협주곡 3번 역시 1909년 9월 이바놉카에서 썼어요.

이바놉카의 별장은 1917년 10월 혁명에 이어진 러시아 내전 당시 대부분 파괴됐습니다. 1968년 탐보프주 지역 정부에 의해 재건 논의가 시작됐고, 1982년 마침내 라흐마니노프 박물관으로 변신해 개관했죠. 그 후 이곳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물론이고 클래식 음악과 재즈 공연, 연극 등 다채로운 문화 행사가 펼쳐지는 멋진 장소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루체른 호숫가 헤르텐슈타인서 만년 보내

1917년 12월, 라흐마니노프는 조국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미국에 정착한 라흐마니노프는 생계를 위해 피아니스트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큰 인기를 얻었죠. 미국 이주 전까지는 주로 자신의 작품만 연주했지만 미국에서는 레퍼토리를 늘려 베토벤·쇼팽·슈만 등을 해석했고, 당대 최고 피아니스트의 위치까지 올랐습니다. 분주한 연주 투어 일정에 지친 라흐마니노프는 소란하고 어지러운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하며 작곡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기회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죠.

1930년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의 전기를 쓰려고 찾아온 작가 오스카 폰 리제만과 인사를 나누게 됐고, 리제만의 안내로 스위스 루체른 호수 북쪽에 있는 헤르텐슈타인을 찾았습니다. 그곳은 놀랍게도 자신이 그리워하던 이바놉카와 매우 닮아있었죠. 그는 단숨에 매료됐고, 곧바로 이곳에 집을 짓기 시작했어요.

라흐마니노프는 1932년부터 살기 시작한 루체른 호반(湖畔)의 별장에 '세나르(Senar)'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자신의 이름 세르게이의 앞 두 글자(Se)와 아내의 이름 나탈리아의 앞 두 글자(na), 그리고 라흐마니노프라는 성(姓)의 첫 글자(r)를 딴 것이었죠. 그는 일과 휴식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세나르를 무척 사랑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곳에) 진정한 평화와 고요가 있다"고 했어요.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전 유럽이 황폐해진 1939년 8월 라흐마니노프가 스위스를 떠날 때까지, 세나르는 여름마다 휴식과 재충전을 하고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랠 수 있는 보금자리가 돼주었습니다. 러시아 시절보다 작품 수는 줄었지만, 세나르에서도 그의 후기 작품 중 중요한 걸작들이 나왔습니다.

1934년 완성된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는 지금도 많은 피아니스트가 즐겨 연주하는 명곡이죠. 니콜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을 위한 무반주 카프리스 24번 a단조를 주제로 해 모두 24개의 변주가 이어지는 구성인 이 작품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협주곡 구성으로 만들어졌는데, 로맨틱한 감성과 극적인 전개, 러시아인 특유의 우수가 들어 있어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1936년 발표된 교향곡 3번 작품번호 44 역시 그의 만년을 장식하는 대곡으로, 우아한 선율미와 광대한 스케일이 멋지게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라흐마니노프를 가장 잘 기억할 수 있는 장소 두 곳에서는 그의 탄생 150주년을 맞아 많은 행사가 예정돼 있습니다. 이바놉카에서는 다양한 피아노 공연과 함께 특히 지금까지 잘 조명되지 않았던 라흐마니노프의 성악곡들을 중심으로 한 음악회가 1년 동안 이어집니다. 오랜 기간 보수 공사 중인 세나르 역시 올해는 진행 중인 공사를 잠시 중단하고 라흐마니노프의 특별한 해를 기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준비 중이라고 하네요. 러시아 음악과 라흐마니노프를 사랑하는 팬들에게는 여러모로 풍성한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김주영 피아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기획·구성=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