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생선 가시 싫어한 진시황 위해 살 으깨 경단처럼 뭉쳤대요

입력 : 2023.01.31 03:30

어묵

다양한 종류의 어묵들. /위키피디아
다양한 종류의 어묵들. /위키피디아
최근 한 포털 사이트 설문조사에서 어묵이 군고구마·호떡보다 선호되는 겨울 간식으로 꼽혔어요. 어묵은 으깬 생선 살에 소금·전분·설탕을 섞은 후 가열해서 만드는 음식인데요. 보존과 조리가 쉽고 뜨끈한 국물과 함께 먹을 수 있어 겨울철에 특히 인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어묵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요?

생선의 살을 으깨 만드는 요리의 기원은 중국 진시황(재위 기원전 247~기원전 210)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진시황은 생선을 먹을 때 가시를 다 제거하도록 했어요. 만약 가시가 제대로 제거되지 않은 경우 요리사는 죽임을 당하게 됐죠. 그래서 요리사는 생선 살을 으깨 경단처럼 뭉치는 방법을 고안해냈어요. 이를 어환(魚丸)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조선 시대에 참기름과 간장, 녹말가루를 으깬 생선 살과 섞어 쪄내는 형태로 만들어 먹었다고 해요.

어환을 지금처럼 꼬치에 꽂는 형태로 발전시킨 곳은 일본입니다. 흔히 어묵을 일본어로 '오뎅'이라고 부른다고 알고 있는데요. 사실 오뎅은 어묵이나 곤약·메추리알 등을 넣고 끓인 일본식 국물 요리를 의미하는 겁니다. 이 오뎅에 들어가는 어묵을 일본에서는 '가마보코(蒲鉾)'라고 하는데요. 어묵을 꼬치에 꽂은 것이 물가에 사는 식물인 부들[蒲]과 모양이 비슷해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고 하죠.

일본에서 이 가마보코를 처음 만든 시기는 무로마치 막부(1336~1573) 시기예요. 당시 어묵은 만들기 꽤 어려운 음식이었어요. 그래서 명절에나 먹을 수 있는 의식용 요리로 알려져 있었죠. 하지만 일본이 경제적으로 성장한 에도 막부(1603~1868) 시기에 접어들자, 식용유가 널리 보급됐고 어묵을 만들기 쉬워지면서 점점 대중화됐다고 해요.

조선 시대에 일본식 어묵인 가마보코를 먹어본 사람이 있었어요. 18세기에 살았던 이표라는 사람인데요. 역관(통역사)이었던 그가 일본을 방문했다가 맛을 본 거죠. 그가 쓴 '소문사설(謏聞事說)'이라는 요리책에는 가마보곶(可麻甫串)을 만드는 방법이 소개돼 있어요. 가마보코의 일본 음을 따서 한자로 표기한 걸로 보이는데요, 만드는 방법이 가마보코와는 달라요. 가마보코는 생선 살을 갈아 모양을 빚은 뒤 익힌 음식이지만 가마보곶은 생선 살을 얇게 저민 후, 돼지고기와 쇠고기·버섯·해삼·미나리·고추 등 다양한 재료를 넣어 길게 뭉친 후 쪄서 썰어내는 요리였거든요.

근현대를 거치면서 한국인들에게 대중화된 것은 일본식 어묵이었습니다. 개항 이후 한반도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이 만들어 먹던 어묵이 한국인들에게도 전해졌거든요. 특히 개항장이자 생선이 풍부했던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어묵이 많이 만들어졌어요. 해방 이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부산으로 내려온 피란민들에게 어묵 요리가 널리 퍼졌고, 생선 요리보다 값이 싸면서도 맛과 영양은 비슷했기 때문에 서민들 사이에서 어묵이 금방 대중화됐습니다.

김현철 서울 영동고 역사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