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스위스는 나폴레옹 몰락 후 강대국들의 완충지대 됐죠
입력 : 2023.01.18 03:30
중립국의 역사
- ▲ 지난해 5월 17일 사울리 니니스퇴(왼쪽) 핀란드 대통령과 마그달레나 안데르손(오른쪽) 스웨덴 총리가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방침을 밝히고 있어요. /신화 연합뉴스
스웨덴과 핀란드가 중립국이었다는 사실을 잘 몰랐을 수도 있을 텐데요. '중립국'이라는 지위는 어떻게 인정되는 걸까요?
중립국 되는 방법, 국가마다 달라요
중립국은 특정 전쟁에서 교전국에 대해 중립적이거나, 모든 분쟁에서 영구적으로 중립을 유지하는 국가를 뜻합니다. 그래서 보통 나토나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와 같은 군사 동맹에 가입하지 않죠. 중립국의 권리와 의무는 국제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44국의 대표가 모인 제2차 헤이그 평화 회의(1907)에서 처음으로 체계화됐는데요. 협약에 따르면 교전국은 중립국의 영토를 침범할 수 없으며 만약 중립국이 침입을 받아 군사적으로 저항하더라도 중립성이 훼손되지는 않습니다.
국가마다 중립국이 되는 과정이 다른데요. 보통 주변국과의 조약 또는 UN 선언 등에 따라 중립국이 될 수 있어요. 오스트리아는 1955년 소련과 '모스크바 각서'를 체결하면서 영세중립의 지위를 보장받았어요. 투르크메니스탄은 1995년 유엔 총회에서 영구 중립을 선언하고 승인받았지요.
국가마다 주장하는 중립의 기준도 다르답니다. 코스타리카는 중립국으로서 아예 군대를 두지 않았지만, 스위스·오스트리아는 혹시 모를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군대를 보유하고 있어요. 오스트리아는 UN 평화유지군과 유럽연합에도 참여하고 있답니다.
보통 주변국들이 조약을 승인하면서 영세중립국 지위가 확립되지만, 주변국이 그 조약을 파기하면 중립국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벨기에는 1839년 런던 조약으로 영세중립국이 됐지만,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침공을 받아 결국 영세중립국 지위를 포기했어요.
중립국의 대명사, 스위스
중립국이라고 하면 가장 많이 언급되는 국가는 스위스인데요. 스위스가 중립국으로서의 입지를 확립한 것은 나폴레옹 전쟁(1803~1815) 이후부터입니다. 스위스는 1798년 프랑스의 침략을 받아 위성국(강대국의 주변에 있어 지배 또는 영향을 받는 나라)이 됐는데요.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유럽의 강대국들은 스위스에 프랑스·오스트리아 사이의 완충지대 역할을 기대했어요.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의 사후 수습을 위해 모인 빈 회의에서 프랑스·영국 등 유럽 열강들은 스위스의 독립과 중립국 지위를 승인했답니다. 이후 스위스는 영세중립국 지위를 엄격하게 지키려 노력했어요.
스위스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난민을 수용하면서도 군사적으로는 어느 쪽 편도 아니었어요. 1920년에 결성됐던 국제 연맹은 공식적으로 스위스의 중립성을 인정하고 제네바에 본부를 세웠습니다. 실제 스위스는 오늘날까지 중립국으로서의 상징성을 가장 강하게 가진 나라예요. 스위스의 남서부에 있는 제네바에는 국제적십자위원회·세계보건기구 등 많은 국제기구가 설치돼 있어 '평화의 수도(Peace Capital)'라고 불린답니다.
2002년 스위스는 국민투표로 유엔 가입이 결정되면서 유엔의 190번째 회원국이 되었는데요.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스위스가 더 이상 엄밀한 의미의 중립국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해요. 반면 범세계적인 집단 안보 체제인 UN에 가입하는 것은 중립성을 훼손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어요. 또 스위스가 UN 가입 신청서에 '중립성의 원칙'을 명시했기 때문에 중립국으로서의 지위를 포기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지요.
스웨덴과 핀란드의 경우
스웨덴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 전통적으로 중립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군사 동맹에 참여하지 않았어요. 제1·2차 세계대전에서도 중립 노선을 유지해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지 않았지요. 20세기 내내 스웨덴은 국제 평화와 안보를 증진하기 위한 외교 정책을 고수했습니다. 냉전 기간에도 중립적 위치를 이용해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대결을 완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스웨덴은 우리나라의 남북 관계에도 관여하고 있는데요. 남북 간의 분쟁 방지와 조정을 위해 만들어진 '중립국 감독위원회'에서 스위스와 함께 활동하고 있어요.
핀란드는 중립국으로서의 역사가 길지는 않습니다. 1917년 러시아에서 독립한 후에도 영토 내에 러시아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어요. 1948년 소련과 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할 때 조약 서문에 '핀란드는 강대국 간의 갈등에서 벗어나 UN 원칙에 따라 평화를 유지한다'는 내용을 넣어 중립국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죠. 이 조약은 체결국 간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는데요. 서로에 대항하는 군사 동맹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조항도 있었죠. 냉전 기간에 소련 군대가 핀란드에서 철수하면서 점점 다른 국가들도 핀란드의 중립성을 인정했답니다.
사실 스웨덴과 핀란드가 군사 동맹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1994년부터 나토의 평화 협력 프로그램에 가입해 협력해 왔는데요. 이번에 나토에 가입하게 된다면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북대서양조약 5조에 따라 처음으로 핵보유국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고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게 돼요.
☞바티칸 시국(市國)
바티칸은 영세중립국 중 특수한 유형인데요. 바티칸의 주권은 교황한테 있고 교황청은 정치적 중립성을 가진 종교 기관이기 때문에 바티칸도 영세중립국으로 인정받고 있어요. 1929년 이탈리아 정부와 맺은 라테란 조약에 바티칸의 영구중립성이 명문화돼 있지요.
- ▲ 스웨덴과 스위스의 ‘중립국 감독위원회’ 대표들이 2008년 3월 5일 경기 의정부에서 열린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감독하기 위해 참석해 착용했던 유니폼 패치(상의의 팔 부분에 붙이는 로고 모양 자수)예요. 왼쪽은 스웨덴, 오른쪽은 스위스 패치입니다. /위키피디아
- ▲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 본부. /AFP 연합뉴스
- ▲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국제적십자위원회 본부. /위키피디아
- ▲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보건기구 본부.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