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도마뱀붙이처럼 벽·천장 걷고, 장수풍뎅이같이 날아요

입력 : 2023.01.10 03:30

생체 모방 로봇

/그래픽=유재일
/그래픽=유재일
로봇이 성큼성큼 벽을 오릅니다. 위에서 로봇을 끌어당기는 줄이 보이지도 않는데 말이에요. 벽면을 따라 위로 향하던 로봇이 이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걷기 시작합니다. 마치 영화 '스파이더맨' 속 한 장면 같아요. 중력을 거스르는 초능력을 쓰는 것 같은 이 로봇의 정체는 뭘까요? 국내 과학자들이 개발한 4족 보행 로봇 '마블(marvel)'입니다.

최근 KAIST와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공동 연구팀은 4족 보행 로봇 마블을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실제로 작동하는 영상을 공개했어요. 별도의 장치 없이 성큼성큼 벽과 천장을 오르는 마블엔 어떤 기술이 숨어 있는 걸까요?

자석의 힘으로 벽과 천장을 척척 걸어요

마블은 개나 소처럼 네발로 걷는 4족 보행 로봇입니다. 몸무게는 8㎏으로, 푸들이나 몰티즈 같은 소형견 크기만 하죠. '다양하고 신속한 이동을 위한 자기 접착식 로봇(Magnetically Adhesive Robot for Versatile and Expeditious Locomotion)'이란 단어에서 앞글자를 따 이름을 지었지요.

별도의 장치 없이 벽과 천장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마블의 비밀은 발바닥에 있어요. 발바닥에 '영전자석'이 붙어 있거든요. 영전자석은 평소에는 일반 자석처럼 금속과 착 달라붙는 자성을 띠다가, 전기가 흐르면 자성을 잃는 자석이에요. 이 원리를 이용해 로봇의 발이 표면에 붙어야 할 때는 자성을 띠게 하고, 내딛는 순간에는 떨어지도록 미세한 전류를 흘리는 거죠. 그럼 마블의 발이 표면에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성큼성큼 걸을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조이스틱으로 직접 조종하며 마블이 기둥 형태의 탱크에 오르는 작업을 시연했어요. 탱크 표면은 녹이 슬었고, 0.3㎜ 두께의 페인트가 발려 있었어요. 그러나 무리 없이 전진, 후진, 회전 동작까지 완벽하게 수행했어요. 마블은 최대 5㎝의 장애물이나 10㎝의 틈도 거뜬히 넘을 수 있습니다. 몸에 3㎏의 짐을 매달고 움직일 수도 있어요.

생물들의 생존 전략 따라 한 생체 모방 로봇

연구진은 마블의 모양과 움직임이 도마뱀붙이에게서 영감을 받은 거라고 설명했어요. 도마뱀붙이는 '게코 도마뱀'으로도 잘 알려진 동물이에요. 발바닥에 아주 작은 주름이 있고, 주름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털이 빽빽하게 나 있지요. 이 털들이 표면에 닿았을 때 서로 잡아당기는 힘인 '인력'이 발생해요. 덕분에 도마뱀붙이는 접착제가 없어도 표면에 잘 붙어 있을 수 있어서 벽이나 천장을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연구진은 마블이 도마뱀붙이의 전략을 자석의 힘으로 구현한 거라고 설명했어요.

이처럼 최근 개발되는 로봇은 생물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진화하고 있습니다. 생물들은 오랜 시간 자연에 적응하고 살면서 찾아낸 자신들만의 생존 비법이 있거든요. 도마뱀붙이의 발바닥처럼 말이에요. 생물들의 구조와 기능을 흉내내 만든 로봇을 '생체 모방 로봇'이라고 해요.

4족 보행 로봇은 생체 모방 로봇 중에서도 이미 연구가 활발한 분야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것으로 알려진 치타의 움직임을 따라 만든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의 '치타'가 대표적이지요. 2018년에 공개된 '미니 치타'는 치타의 관절과 움직임을 본떠 만든 4족 보행 로봇인데, 몸길이만 40㎝이고 초당 2.3m를 달릴 수 있어요.

건국대학교에서 개발한 'KU비틀'은 장수풍뎅이의 날갯짓을 모사해서 만든 비행 로봇이에요. 장수풍뎅이는 날 수 있는 곤충이죠. 새와 달리 꼬리날개가 없어 양쪽 두 날개만으로 자유롭게 비행해요. 심지어 날개에는 근육도 없죠. 이런 특징을 그대로 본뜬 비행 기술을 로봇에 구현했어요. 일명 '두더지 로봇'으로 불리는 '몰봇'은 우주 행성에 가서 땅을 파고 표본 채취를 하도록 KAIST 연구팀이 개발했는데, 두더지의 행동 능력을 모방한 생체 모방 로봇이랍니다.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을 모방한 로봇도 있어요. 서울대학교 연구진은 식물의 뿌리를 본뜬 소프트 로봇을 개발했어요. 소프트 로봇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로봇과 달리 부드러운 재질로 만들어서 단단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몸집을 작게 접을 수도 있어요. 연구진은 젤리처럼 말랑말랑하면서 물을 흡수하면 팽창하는 '하이드로젤'을 쌓아 올려 식물의 뿌리 모양으로 만들었어요. 이후 2㎝ 두께의 벽돌 안에 이 로봇을 놓고 물을 붓자, 로봇의 몸집이 바람을 넣은 튜브처럼 커졌어요. 그러고는 힘을 발휘해 벽돌을 부술 수 있게 됐죠.

위험한 사건 현장, 로봇에 맡겨요

마블은 저장 탱크처럼 높은 곳에 올라 금이 간 곳은 없는지, 부식 위험은 없는지 등을 점검하는 작업을 할 거예요. 나아가 건물 벽, 철골 구조의 다리, 화재 현장, 무너진 건물 속 등 위험한 현장에 투입돼 사람 대신 일을 수행할 수 있죠. 대체로 사람보다 몸집이 작기 때문에 위급한 환경에서도 움직이기 훨씬 편하고, 카메라나 레이더 같은 다양한 장비를 붙여서 다양한 정보를 한 번에 측정할 수도 있어요.

실제로 여러 로봇이 현장에 투입된 적이 있습니다. 최근 4족 보행 로봇 '스폿'은 건물이 지어질 공사 현장에 들어가, 그 장소가 안전한지 측량 장비로 측정하고 데이터를 모으는 활약을 했어요. 지난 2019년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에 큰불이 났을 때, 건물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가 불을 끈 것도 로봇이었지요. 생물들의 다양한 능력을 모방해 우리 주변 곳곳에서 활약할 로봇들의 모습이 더욱 기대됩니다.
이윤선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