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모차르트 스승, 브람스 절친… 조연이지만 중요한 역할 했죠

입력 : 2023.01.09 03:30

토끼해에 태어난 음악가들

①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의 초상과 영국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 올드 교회에 있는 그의 묘비석. ②프란츠 폰 주페와 그의 유해가 묻혀 있는 오스트리아 빈 중앙공동묘지 음악가 묘역. ③요제프 요아힘과 오스트리아 부르겐란트주 키치 지역에 있는 그의 생가. ④다비드 포퍼와 그가 188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결성한 현악 4중주단의 모습. /위키피디아
①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의 초상과 영국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 올드 교회에 있는 그의 묘비석. ②프란츠 폰 주페와 그의 유해가 묻혀 있는 오스트리아 빈 중앙공동묘지 음악가 묘역. ③요제프 요아힘과 오스트리아 부르겐란트주 키치 지역에 있는 그의 생가. ④다비드 포퍼와 그가 188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결성한 현악 4중주단의 모습. /위키피디아
올해는 '검은 토끼 해'인 계묘년(癸卯年)입니다. 예로부터 토끼는 생기가 넘치고 지혜로우며, 풍요와 번영을 상징한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토끼띠에 태어난 음악가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음악사에서 최고의 주연은 아니지만 결코 빠질 수 없이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이죠.

먼저 만나볼 사람은 1735년, 을묘년생 작곡가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1735~1782)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요한 크리스티안은 어려서부터 음악가로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열다섯 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그 후로는 형인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과 함께 공부를 이어갔죠. 평소 오페라 작곡에 흥미를 갖고 있던 요한 크리스티안은 1756년 이탈리아로 건너갑니다. 원래 개신교였지만 천주교로 개종한 후 1760년 밀라노 대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취임했는데요. 1762년부터는 영국 런던으로 근거지를 옮겨 그곳에서 오페라 작곡을 계속합니다. 당시 영국 왕이었던 조지 3세의 부인 샬럿 왕비의 음악 교사로 일하기도 했죠.

오페라와 교향곡, 협주곡과 실내악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많이 남긴 요한 크리스티안은 모차르트와의 인연으로도 유명한데요. 당시 천재 소년으로 유럽 투어를 돌고 있던 모차르트는 런던을 방문했을 때 그를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해요. 모차르트는 특히 요한 크리스티안의 협주곡들에 큰 감명을 받고 자신의 초기 협주곡에 그의 스타일을 많이 사용하기도 했어요. 초기 고전파 시기에 많은 발자취를 남긴 요한 크리스티안에 대해 베토벤 역시 깊은 존경심을 표했다고 합니다.

다음은 1819년, 기묘년생 작곡가 프란츠 폰 주페(1819~1895)입니다.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서 태어난 주페는 어린 나이에 작곡을 시작했는데요. 아버지의 반대로 어린 시절에는 법학을 공부하기도 했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오스트리아 빈으로 활동 지역을 옮긴 주페는 오페라 작곡가로 유명했던 이그나즈 폰 자이프리트에게 배우면서 오페레타와 극음악을 쓰는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오페레타는 '가벼운 오페라'를 뜻하는 말인데요. 주로 희극적인 내용을 다루며 중간에 연극처럼 대사를 하는 부분도 있어서 누구나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들이에요.

주페는 1840년 빈의 요셉슈타트 극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 카를 극장 등 빈의 주요 극장을 중심으로 40여 년간 지휘자와 작곡가로서 많은 히트작을 남겼어요. 19세기 빈의 오페레타를 주도한 인물로 불립니다. 그가 남긴 흥겨운 분위기의 오페레타 서곡들은 지금까지도 많이 연주되는데요. 그중 '시인과 농부' 서곡(1846)은 1935년 만화영화 '뽀빠이'에, '경기병' 서곡(1866)은 1942년 미키마우스 영화에 삽입되면서 대중적으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1831~1907)은 1831년 신묘년생입니다. 다섯 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해 여덟 살에 첫 공개 연주를 할 정도로 천재성을 발휘했지요. 요아힘은 1843년부터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멘델스존을 사사(師事)했고, 이듬해 런던에서 멘델스존의 지휘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해 성공을 거뒀죠. 요아힘은 1853년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와 만나 우정을 쌓게 되는데, 이 만남은 그의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됩니다. 이들의 우정은 굳건하게 유지됐고, 요아힘은 1856년 슈만의 사망 이후에도 클라라·브람스와 협력해 많은 작품을 탄생시켰어요.

요아힘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역시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 77이죠. 작곡 과정부터 브람스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요아힘은 1879년 1월 라이프치히에서의 역사적인 초연을 맡아 연주했습니다. 1869년 요아힘 현악 4중주단을 창단해 베토벤의 현악 4중주 곡들을 널리 알렸고, 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제자 육성에도 힘을 기울였죠. 요아힘은 작곡가로도 활동했어요. 세 곡의 바이올린 협주곡, 실내악 작품들이 알려져 있죠.

요아힘이 후대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많은 영감을 제공한 인물이었다면, 1843년 계묘년생인 다비드 포퍼(1843~1913)는 첼리스트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연주자이자 작곡가였습니다. 체코 프라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포퍼는 프라하 음악원에서 공부하고 피아니스트 한스 폰 뷜로를 통해 리스트를 소개받은 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어요. 1867년 빈에서 데뷔 음악회를 열었고, 1886년부터 헝가리 부다페스트 음악원의 교수로 일하는 동시에 부다페스트 현악 4중주단의 멤버로도 활약했습니다. 화려한 기교를 지닌 첼로 명인이었던 포퍼는 첼로를 위한 다양한 작품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그중 연주회용 폴로네즈 작품 14, 요정의 춤 작품 39, 헝가리 광시곡 작품 68 등은 연주회에서 늘 인기가 많은 명곡입니다. 또 무반주 첼로를 위한 40개의 연습곡 작품 73은 첼로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매우 중요한 교재이기도 합니다.

위의 네 음악가는 그들 자체가 훌륭한 예술가이기도 하지만, 자신보다 후대에 좋은 영향을 주며 이름을 남긴 인물들입니다. 내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어 보겠다는 새해 각오를 세워보는 건 어떨까요.
김주영 피아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기획·구성=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