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조선 귀신잡이들이 펼치는 모험 이야기… 괴물 통해 우리 내면 다시 보게 해주죠
빙고선비
박생강 지음 | 출판사 아르띠잔 | 가격 9000원
옛날 사람들도 종종 귀신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요? 이 판타지 소설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서빙고 헛간에 모여 귀신과 괴물 이야기를 했으리라는 상상에서 시작합니다. 책에는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이물학'이란 말이 나와요. '이물(異物)'은 한자로 '다른 존재'를 뜻합니다. 사람을 해치는 '괴물'과 구별하기 위한 명칭이죠. 사람을 해치는 서양 괴물과 달리 우리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괴물은 공격적이지 않습니다.
가령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귀신과 용감한 원님' 이야기가 대표적이에요. 새로 부임하는 원님이 첫날 밤에 모두 죽어요. 귀신이 원님을 해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고, 아무도 이 마을에 원님으로 오려고 하지 않죠. 그러던 중 한 용감한 젊은 원님이 스스로 찾아옵니다. 부임 첫날 밤, 귀신이 나왔지만 용감한 젊은 원님은 놀라지 않았어요. 대신 귀신의 하소연을 밤새워 들어줍니다. 날이 밝자 원님은 그를 해쳐 원혼이 되게 한 범인을 찾아내 벌을 주지요. 이전에 부임했던 원님들도 귀신이 해친 것이 아니라, 모두 마음이 약해 스스로 놀라서 죽은 것이라는 것도 밝혀져요. 그러니까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귀신은 사람을 해치는 '괴물'이 아니라, 사람과 다를 뿐인 '이물'인 셈이지요.
이 책에서는 주인공이 셋 등장합니다. 조선 시대 다 쓰러져가는 양반가에서 태어난 성무와 순덕 남매, 그리고 옆집 노비 소녀의 혼령이죠. 성무는 하급 관리예요. 여동생 순덕은 명문가에 시집갔다가 쫓겨났죠. 귀신이 달라붙은 남편을 구하려고 남편 목을 졸랐거든요. 사실 순덕은 또래 소년들을 한 손으로 제압할 정도로 힘이 장사였어요. 또 한 주인공인 이웃 집 노비 소녀는 돌림병으로 어린 나이에 죽어 혼령이 됐어요. 이야기는 노비 소녀의 시점에서 전개됩니다.
세 주인공은 우연히 황철 영감을 만나면서 본격적인 모험의 길로 들어섭니다. 황 영감은 조선 최고의 귀신잡이예요. 제자 귀신잡이인 감돌과 함께 조선의 이물들을 처리해왔죠. 하지만 이제 생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안 황 영감은 성무·순덕·감돌 중 한 명에게 '조선 최고의 귀신잡이'라는 명성을 물려주려 해요. 그런데 오랫동안 황철의 곁을 지키며 스승의 명성이 당연히 자기 것이라 여겼던 제자 감돌은 결국 스승을 배신하고 잡아두었던 귀신들을 이용해 세상을 어지럽히기 시작합니다.
괴물과 이물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우리는 왜 좋아할까요? 그들이 완전히 다른 존재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어떤 측면을 크게 증폭한 존재이기 때문일 거예요. 그러니까 마치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우리는 괴물 이야기를 통해 내면을 살피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악몽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미래에 갈 수 없이 악몽 속에 살아. 하지만 악몽 속에서 답을 찾는 사람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지." 책 속 구절에서 우리는 '이물'로 형상화된 우리의 내면을 똑바로 들여다보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