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2차 대전 중 대기근 덮쳐… 수백만 명 목숨 잃었죠

입력 : 2022.12.14 03:30

식량 위기

1815년 탐보라 화산 폭발로 인해 형성된 칼데라(화산 폭발로 분화구 주변이 함몰되며 생긴 우묵한 곳). 폭발로 유발된 기상이변은 3년 이상 지속되며 대규모 흉작과 기아가 발생했어요. /위키피디아
1815년 탐보라 화산 폭발로 인해 형성된 칼데라(화산 폭발로 분화구 주변이 함몰되며 생긴 우묵한 곳). 폭발로 유발된 기상이변은 3년 이상 지속되며 대규모 흉작과 기아가 발생했어요. /위키피디아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가 점령지에서 최소 10억달러(약 1조2900억원) 상당의 밀을 약탈해 갔다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산하 기관의 분석이 나왔어요. 지난 3일(현지 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NASA 산하 식량 안보·농업 프로그램인 NASA 하베스트(harvest)는 인공위성 사진 등을 토대로 러시아군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밀밭에서 600만t 가까운 밀이 수확된 것을 확인했어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식량난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어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 수출량의 약 30%를 차지해요. 옥수수 수출 비율도 15% 정도이고요. 두 나라의 전쟁으로 세계 식량 시장이 크게 불안해지면서 식량 가격이 치솟았어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은 지난 5월 "이번 전쟁으로 물가가 상승하면서 빈곤국의 식량 사정이 악화했다"며 "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이처럼 전쟁과 분쟁은 당사국뿐 아니라 세계의 식량 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데요. 식량 위기를 초래하는 원인은 다양해요. 자연재해 때문일 수도 있고, 이번 우크라이나 사례처럼 전쟁 때문일 수도 있지요. 때로는 식량 위기 때문에 전쟁이나 혁명이 일어나기도 하는데요. 역사적으로 어떤 식량 위기가 있었는지와 함께 각각의 사건에 얽힌 이야기를 알아볼게요.



평균 기온 떨어지며 전 세계 덮친 흉작과 기아

먼저 자연재해로 인해 발생했던 식량 위기를 살펴볼게요. 1815년 인도네시아의 탐보라 화산 폭발은 인류 역사가 기록된 이래 최대 규모의 화산 폭발로 여겨집니다. 탐보라 화산이 폭발했을 때 이 소리는 2600㎞ 떨어져 있는 지역까지 들렸고, 화산재는 1300㎞ 거리까지 날아갔대요. 폭발로 삼각형 모양의 산머리 1600m 높이 부분이 통째로 날아갔고 주변 560㎞ 범위까지 용암이 흘러내렸죠. 인도네시아 섬들에 4m 높이의 해일이 덮치기도 했어요.

폭발로 인한 화산재와 유황 등이 대기를 채우며 햇빛을 막았고, 기온을 떨어뜨렸습니다. 이를 '화산성(性) 겨울(volcanic winter·큰 규모의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화산재나 부산물로 지구의 온도가 낮아지는 현상)'이라고 해요. 농사는 망가졌지요. 해수면이 높아져 바닷물이 강으로 역류하면서 수량이 늘어 수인성(水因性) 질병인 콜레라도 창궐했어요.

폭발로 유발된 기상이변은 3년 이상 지속되며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이 기간 연간 세계 평균 기온이 섭씨 0.4~0.7도 정도 떨어졌다고 해요. 이로 인해 유럽과 북미권 사람들은 1816~1817년 무렵을 '여름 없는 해(Year without a Summer)'라고 불렀고, 아시아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흉작과 기아가 발생했어요.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서 200여 만명이 굶어 죽었다고 추정되지요.



"빵 달라" 시위에 무너진 로마노프 왕조

극심한 식량 위기는 혁명으로 이어지기도 해요. 1613년부터 304년간 이어져 온 러시아 제국의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린 1917년 2월 혁명도 식량 위기를 계기로 시작됐는데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에 참전한 러시아 제국은 전쟁의 여파 등으로 심각한 식량 부족 현상을 겪게 됩니다.

1916년 말 페트로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식당에서 노동자가 지불해야 할 한 끼의 식사 값은 전쟁 초기에 비해 7배나 올랐어요. 1917년 초에는 추운 날씨 때문에 식량 유통에 차질이 생기면서 식품 가격이 급등해 빵 값은 매주 2%, 감자와 양배추는 3%, 설탕은 10% 이상 올랐다고 하는데요. 당시 비밀경찰은 "혁명이 일어난다면 굶주림으로 인해 자발적인 폭동이 될 것이다"라고 예상하기도 했대요.

마침내 1917년 2월 여성과 노동자들은 "빵을 달라"고 외치며 전쟁 반대와 전제 정치 타도를 내걸고 시위를 시작했어요. 이 시위로 인해 황제(차르)인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고 로마노프 왕조는 무너집니다. 같은 해 10월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며 소련이 탄생합니다.



말라리아 창궐하며 사망자 수 더욱 늘어

전쟁 중 자연재해가 겹쳐 식량 위기가 더욱 심각해지기도 합니다. 인도 동북부 벵골 지역은 서벵골주와 방글라데시로 나뉘어 있는데,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 가운데 하나예요. 이곳은 갠지스강과 브라마푸트라강 하류의 커다란 삼각주를 중심으로 농업이 발달했는데요. 19세기 후반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며 점차 식량 자급이 어려워지고 농지가 적거나 없는 사람도 늘어나 빈곤 계층이 많아졌어요.

이 지역에서는 미얀마 등지에서 쌀을 비롯한 곡물을 들여와 식량을 공급하고 가격을 안정시켜 왔는데요. 1939년 2차 대전이 시작돼 1942년 일본이 미얀마를 침공하면서 미얀마에서 곡물 수입이 막히게 돼요. 이런 상황에서 미얀마 난민이 벵골 지역으로 몰려들었고 식량 부족 현상은 더욱 심해졌죠.

그런데 1942년 10월 발생한 사이클론(벵골만과 아라비아해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으로 많은 농경지가 훼손되고 병충해까지 더해져 상황이 심각해집니다.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대기근이 일어나는데 이를 벵골 대기근이라고 해요. 영국군은 일본의 침략을 막겠다며 벵골 지역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더욱 엄격하게 제한했어요. 그러면서 쌀값은 더욱 폭등하게 됩니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겹치며 곳곳에서 기아로 죽는 사람이 속출했어요. 영양 결핍으로 인해 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까지 창궐하면서 사망자 수는 더욱 늘었습니다. 수백만 명이 죽었다고 추정되지요. 1944년 연합군의 우세로 상황이 바뀌고 나서야 대기근을 수습하기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러시아 제국에서는 식량 부족으로 인해 1917년 2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어요. 사진은 시위가 일어난 페트로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습. /위키피디아
러시아 제국에서는 식량 부족으로 인해 1917년 2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어요. 사진은 시위가 일어난 페트로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습. /위키피디아
인도 동북부 벵골 지역에서는 2차 대전과 대기근이 겹치며 사망자가 속출했어요. 벵골 대기근 당시의 모습. /위키피디아
인도 동북부 벵골 지역에서는 2차 대전과 대기근이 겹치며 사망자가 속출했어요. 벵골 대기근 당시의 모습. /위키피디아
정세정 장기중 역사 교사 기획·구성=조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