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미술관에 갔어요] 왕관 쓰고 봉 든 황제 초상화… 여러 점 배포해 권위 세웠죠

입력 : 2022.12.05 03:30

합스부르크 왕가
600여 년간 유럽 지배했던 가문의
왕·왕비·공주 초상화 등 미술품 96점
韓·墺 수교 130년 맞이 특별전 열려

작품1 - 베른하르트 슈트리겔(원작을 모사), ‘막시밀리안 1세’(1508년 이전). /빈미술사박물관
작품1 - 베른하르트 슈트리겔(원작을 모사), ‘막시밀리안 1세’(1508년 이전). /빈미술사박물관
올해는 한국과 오스트리아 수교(修交·나라와 나라 사이 외교 관계를 맺는 것) 13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1892년 조선 임금 고종과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 사이에서 이뤄진 수교가 출발점이었는데요. 오랜 우호 관계를 기념하기 위해 내년 3월 1일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특별전을 엽니다. 요제프 1세가 합스부르크가(家) 후예였어요.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이 갖고 있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Habsburg) 왕가 미술품 96점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합스부르크 왕가(재위 1273~1918)는 유럽에서 가장 긴 역사와 전통을 지닌 대표 가문이에요.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루돌프 1세로부터 시작해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황제에서 물러난 카를 합스부르크 로트링겐에 이르기까지 600여 년이나 유럽에서 핵심 세력으로 군림했지요.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에 띄는 작품은 유럽에 살았던 역대 합스부르크가 왕과 왕비, 그리고 공주 실물 초상화입니다.

15세기 무렵부터 중요하게 여겨져

초상화는 인물의 생김새와 닮게 그리면서도 개성을 강조하고, 성품까지 드러낼 목적으로 그리는 그림이에요. 옛 왕실 초상화는 공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어요. 왕의 개인적 특성만 나타내는 게 아니라 왕조를 대표한다는 의미가 덧대져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왕의 공식 초상화는 마치 오늘날 각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처럼 자국의 존재를 표현할 목적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국가라는 테두리가 그리 강력하지 않았던 중세 기독교 공동체 시절에는 군주의 초상화가 강조되는 일이 드물었어요. 유럽에서 왕실 초상화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건 왕이 지배하는 종족과 영토의 개념이 중요해지는 15세기 무렵이에요.

원본 그림 따라 그린 모사 작품 많아

합스부르크 가문에서는 막시밀리안 1세(재위 1508~1519)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서 위엄을 세우기 위해 초상화를 활용했어요. 〈작품 1〉을 보세요. 왕관을 쓰고 봉을 든 막시밀리안 1세는 갑옷을 입고 그 위에 화려한 장식이 있는 망토를 둘렀어요. 황제는 당대 명성이 높던 초상화가 베른하르트 슈트리겔에게 초상화를 주문했는데, 그가 그린 황제 초상화는 똑같이 여러 점 복제 그림으로 그려져 황제의 공식 이미지처럼 홍보됐어요. 황제의 초상화 중에는 원본 그림을 그대로 따라 그린 모사 작품이 많은데요. 귀한 존재였던 황제가 매번 그림의 모델로 직접 서기 곤란했기 때문이랍니다. 이 그림도 슈트리겔의 제자가 스승이 그린 원본을 모사한 거예요.

이번 전시에는 막시밀리안 1세가 입었던 갑옷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작품 2〉는 1490년대 초 막시밀리안 1세가 합스부르크 가문 영지를 물려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갑옷이에요.

이 갑옷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갑옷 장인이던 로렌츠 헬름슈미트가 만든 것으로, 무릎 보호대의 양 날개에 돋을새김(평평한 면에 글자나 그림 따위를 도드라지게 새기는 일)이 있는 것이 로렌츠 갑옷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해요. 그는 16세기 중반까지 합스부르크 가문을 위해 갑옷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작품 3〉은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실 궁정화가이자, 바로크 미술의 거장이기도 한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펠리페 4세 초상화예요. 검소해 보이는 검은 옷을 입고 있는 펠리페 4세 모습에서는 국왕의 권위를 표현해 줄 만한 왕관이나 장신구가 보이지 않네요. 그는 장갑을 낀 한 손은 검의 손잡이 위에 걸쳐 놓고, 장갑을 벗은 다른 손으로 종이를 쥐고 있어요. 힘과 지혜에서 신중을 다한다는 경건한 왕의 태도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혼담 위해 그려진 공주 초상화

펠리페 4세의 딸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를 그린 초상화인 〈작품 4〉는 빈미술사박물관에서 인기 있는 그림으로 손꼽히는데요. 통통한 뺨과 반짝거리는 곱슬머리가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궁중 전통에 따라 테레사 공주에 대한 혼인 이야기가 다른 왕실과 일찌감치 오갔고, 이 그림은 공주의 모습을 신랑 측 부모에게 공식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그려졌다고 해요.

〈작품 5〉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왕실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졌던 왕비 초상화입니다. 오늘날 뮤지컬('엘리자벳')로도 유명한 엘리자베트 황후이지요. 21세 때 모습입니다. '시시(Sisi)'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그는 15세 때 언니와 함께 황궁을 방문해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를 만나게 돼요. 황제의 신부가 될 사람은 언니였지만, 그날 황제는 동생을 보고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고 해요. 결국 언니를 대신하여 엘리자베트가 황후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시민들은 왕족의 행렬이 있을 때면 우아하고 멋진 황후의 모습을 보고 싶어 안달했어요. 마치 대중 스타와 같았고, 현재도 오스트리아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황후로 꼽혀요. 하지만 스위스에서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당하면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작품2 - 로렌츠 헬름슈미트, 막시밀리안 1세가 합스부르크 가문 영지를 물려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갑옷(1492년쯤). /빈미술사박물관
작품2 - 로렌츠 헬름슈미트, 막시밀리안 1세가 합스부르크 가문 영지를 물려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갑옷(1492년쯤). /빈미술사박물관
작품3 - 디에고 벨라스케스, ‘스페인 왕 펠리페 4세’(1632). /빈미술사박물관
작품3 - 디에고 벨라스케스, ‘스페인 왕 펠리페 4세’(1632). /빈미술사박물관
작품4 - 디에고 벨라스케스,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1656년쯤). /빈미술사박물관
작품4 - 디에고 벨라스케스,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1656년쯤). /빈미술사박물관
작품5 - 요제프 호라체크, ‘엘리자베트 황후’(1858). /빈미술사박물관
작품5 - 요제프 호라체크, ‘엘리자베트 황후’(1858). /빈미술사박물관
기획·구성=조유미 기자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