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베토벤·파가니니는 英, 차이콥스키는 佛 국가 인용했죠
입력 : 2022.11.28 03:30
월드컵 출전국의 국가(國歌)
- ▲ ①지난 24일(현지 시각) 카타르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대한민국과 우루과이 경기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는 모습. ②지난 26일 프랑스와 덴마크의 조별리그 D조 경기에 앞서 프랑스 대표팀이 국가를 부르고 있어요. 프랑스 국가의 제목은‘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로,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이나 차이콥스키가 자신의 작품에 라 마르세예즈의 곡조를 일부 사용하기도 했어요. ③베토벤은 영국(잉글랜드)의 국가를 자신의 작품‘영국 국가에 의한 7개의 변주곡’에 사용했어요. ④독일의 국가는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이 작곡했지요. /연합뉴스·AP연합뉴스·위키피디아
17세기 이후 만들어진 찬송가로 알려져
먼저 영국(잉글랜드)의 국가입니다. 제목은 'God save the king'(신이여 왕을 구하소서)으로, 통치자의 성별에 따라 'king'을 'queen'으로 바꿔 부르기도 합니다. 이 곡은 17세기 이후 만들어진 찬송가로 알려졌어요. 작곡가는 미상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바로크풍의 엄숙한 악상을 지닌 3박자의 노래는 단순한 멜로디와 화성(和聲)을 지니고 있어 여러 작곡가가 변주곡을 만들 때 주제(theme·작품 기초를 이루는 짧은 선율 토막)로 사용했습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이 1803년 작곡한 '영국 국가에 의한 7개의 변주곡'은 C장조로, 이 국가의 멜로디를 주제로 삼아 다채로운 변주를 선보입니다. 다양한 리듬이 한꺼번에 등장해 율동감을 주는가 하면, 행진곡풍의 변주와 단조의 변주 등 베토벤 특유의 상상력이 마음껏 펼쳐지지요. 이 변주곡은 기교적으로 그다지 어렵지 않아 어린 학생들도 즐겨 연주합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의 'God save the king' 주제에 의한 변주곡 작품 9는 1829년 만들어졌어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곡은 어느 곡이나 기교적으로 연주하기 매우 어렵고 화려하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요. 이 곡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복잡한 화음과 아르페지오(화음의 각 음을 동시에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차례로 연주하는 주법), 피치카토(현을 손으로 뜯는 주법), 스타카토(음을 짧게 끊어 연주하는 주법) 등이 숨 쉴 틈 없이 등장해 듣는 이들을 놀라게 하지요.
오스트리아 황제 위해 만들어진 곡
독일의 국가는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1732~1809)이 작곡했어요. 하이든은 60대 이후 영국을 여러 번 방문했는데요. 그곳에서 영국인들이 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다지는 모습에 자극을 받아 오스트리아 황제를 위한 국가 '황제 찬가'를 쓰게 됩니다.
이 곡은 당시의 황제 프란츠 2세의 생일인 1797년 2월 12일에 정식으로 발표됐고, 같은 해에 하이든은 자신의 현악 4중주 작품 Op.76 no.3의 2악장을 이 선율을 주제로 사용한 변주곡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2악장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고, 지금까지 '황제'라는 부제로 불리고 있죠.
그런데 오스트리아 작곡가가 만든 곡이 독일 국가로 쓰인다는 사실이 특이하죠? 하이든의 '황제 찬가'는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무너질 때까지는 오스트리아 국가로 쓰였고, 1922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독일 국가로 채택한 이후 1990년까지는 서독의 국가로, 통일 후에는 통일 독일의 국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육군 대위가 작곡한 프랑스 국가
프랑스 국가의 제목은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입니다. 1792년에 작곡된 이 노래는 프랑스 육군 대위이자 아마추어 작곡가였던 클로드 조제프 루제 드 릴(1760~ 1836)이 만들었습니다. '마르세유(Marseille)의 노래'라고도 불리는데요. 마르세유 출신 의용병들이 파리에 입성할 당시 불렀기 때문입니다. 본질적으로는 프랑스인이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압제(권력이나 폭력으로 강제로 누름)에 맞서고 외세의 침략을 무찌르자는 과격한 내용을 담은 군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작곡가가 아닌 외국 작곡가들이 이 작품의 곡조를 사용한 것이 흥미로운데요. 독일의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의 가곡 '두 사람의 척탄병'(1840)이 대표적입니다. 이 곡의 가사로는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1827년 발표한 시가 쓰였는데요. 하이네는 뒤셀도르프에서 러시아와의 전투에서 패하고 부상당한 채 돌아가는 프랑스군을 보고 이 시를 썼다고 합니다.
시의 내용은 러시아군에게 패한 척탄병(수류탄을 던지는 임무를 맡은 병사)의 심경을 그립니다. 조국으로 돌아가던 중 황제(나폴레옹)가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에 찬 병사는 죽어서도 황제를 지키겠다는 각오를 다지는데요. 바로 이 부분에 슈만은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를 삽입해 그 절절한 의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폴레옹과 러시아의 전투를 그린 또 다른 작품이 차이콥스키(1840~1893)의 관현악곡 '1812년 서곡'(1880)이죠. 이 작품에는 나폴레옹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러시아를 찬양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요. 차이콥스키는 러시아 정교 성가, 민요 등과 함께 '라 마르세예즈'를 번갈아 등장시키며 작품 속 전투 상황을 묘사하는데요. 전세가 프랑스군에 불리해져 가는 모습을 처음에 기세 좋게 등장했던 '라 마르세예즈'의 선율이 점차 힘이 떨어지는 듯 연주되다 사라지는 방법으로 표현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국가를 자신의 작품에 모두 사용한 작곡가도 있어요. 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1862~1918)의 피아노곡 전주곡집은 모두 24곡으로(1권과 2권 각 12곡) 그가 창시한 인상주의의 음향, 대상에 대한 추상적 표현과 풍자의 기법 등에서 최고의 작품이라 평가받습니다. 전주곡집 2권 중 9번째 곡 '피크위크 경을 예찬하며'의 첫머리에는 영국 국가가 장중한 느낌으로 등장하는데요. 이 곡에서 영국 국가의 선율은 신비스럽고 우울한 모습으로 변화합니다. 12번째 곡 '불꽃'은 빠르게 움직이는 양손의 어지러운 움직임으로 불꽃놀이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함과 다양한 색채감을 나타냈습니다. 이 곡의 마지막에는 '라 마르세예즈'의 뒷부분 선율이 잠깐 등장하는데요. 드뷔시는 전주곡집 전체를 마무리짓는 대목에서 자신이 프랑스인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동시에 여운을 오래 남기기 위한 방법으로 국가의 선율을 선택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