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예술품 파괴 행위… 탈레반은 55m 바미안 석불 폭파했죠
입력 : 2022.11.23 03:30
반달리즘(Vandalism)
- ▲ ①지난 15일(현지 시각) 오스트리아 환경 단체인‘오스트리아 마지막 세대’활동가가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빈의 레오폴트 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구스타프 클림트의‘죽음과 삶’(1915)에 검은색 액체를 뿌렸어요. 보호 유리 덕분에 작품 자체는 훼손되지 않았어요. 이렇게 예술품이나 문화유산 등을 파괴·훼손하는 행위를‘반달리즘(Vandalism)’이라고 해요. ②탈레반은 5세기쯤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55m 바미안 석불(왼쪽)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했어요. 오른쪽 사진은 석불이 있던 자리. ③이슬람 수니파 무장 조직 이슬람국가(IS)는 우상 숭배를 금지한다는 이유로 고대 바빌로니아의 신전인 벨 신전(위)을 파괴했어요. 아래 사진은 신전이 있던 자리. /AP연합뉴스·위키피디아
지난달 14일에는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화석 연료 사용에 반대하는 환경 운동가들이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해바라기'에 토마토 수프를 뿌렸어요. 이들은 예술 작품에 갖는 관심만큼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 달라고 주장하는데요. 다행히 대부분의 명화는 유리 액자에 보관돼 있어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런 방식의 시위는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문화유산이나 예술품 등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를 '반달리즘(Vandalism)'이라고 해요. 역사 속에서 자신의 주장에 이목을 집중시키려고 예술 작품이나 문화재를 부수거나 훼손하는 일은 끊임없이 일어났어요. 때로는 전쟁을 하며 문화재를 대규모로 파괴하기도 하죠.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살펴볼게요.
수난당한 벨라스케스의 비너스
오늘날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는 17세기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가 그린 '거울 속의 비너스' 작품이 남아 있어요. 벨라스케스가 그린 누드화 네 점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작품으로, 그림 속의 비너스는 침대에 기대 누워 큐피드가 들고 있는 거울을 보고 있지요.
그런데 이 그림은 1914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돼 있던 도중 메리 리처드슨이라는 한 여성에 의해 훼손당했어요. 비너스의 등 부분을 수차례 손도끼로 난도질했는데, 그녀는 1900년대 초 여성 참정권 운동의 지지자로 밝혀졌어요. 리처드슨은 당시 여성 참정권 운동의 핵심이자 페미니즘의 상징적인 인물인 에멀라인 팽크허스트의 투옥에 항의하고자 이런 행동을 했다고 해요. 미술관은 상처 난 비너스의 등을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는데요. 이 과정은 이후 미술 복원 작업 기술의 교본이 됐다고 해요.
탱크 등으로 유적 대규모 파괴한 탈레반
이보다 심각한 반달리즘의 사례들이 있어요. 문화재를 대규모로 파괴하는 건데요. 그중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중부 바미안주에 있는 6세기 간다라 미술(불교 미술의 양식)을 대표하는 고대 석굴 사원과 불상을 파괴했어요. 탈레반은 '우상숭배 금지'를 이유로 2001년 3월부터 아프가니스탄 내에 있는 모든 불상을 파괴하겠다고 선언했는데요.
이후 탈레반은 로켓포와 탱크 등을 이용해 유적을 대규모로 훼손하기 시작했어요. 특히 5세기쯤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55m의 바미안 석불은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해서 폭파했는데, 이 모습이 실시간으로 중계되자 전 세계는 경악했어요. 이 석불은 당나라의 승려인 현장(玄奘) 법사가 "거대하게 서 있는 돌로 만든 불상이 금빛으로 반짝인다"고 기록했고, 우리나라의 승려 해초가 먼 길을 찾아가 보고자 했을 정도로 중요한 문화유산이에요. 이후 2003년 이 석불이 있던 곳과 주변에 있는 동굴 100여 개, 크고 작은 불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어요. 늦었지만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거지요. 최근에는 바미안 석불 복원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는데, "'반달리즘' 사례의 교훈을 주기 위해 파괴 현장을 보존하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내전과 분쟁으로 훼손되기도
내전과 분쟁으로 문화재가 파괴되기도 해요. 수년째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시리아는 여러 민족과 정치 세력이 경쟁하며 차지했던 곳으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해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곳이에요.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 6곳이나 있는데 내전과 분쟁으로 모두 심각하게 훼손됐어요.
특히 팔미라와 보스라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페르시아 등의 다양한 문화 유적이 있는데요. 2015년 팔미라를 점령한 극단주의 무장 세력인 이슬람 수니파 무장 조직 이슬람국가(IS)는 우상숭배를 금지한다는 이유로 2000년의 역사를 지닌 벨 신전(고대 바빌로니아의 신전)과 고대 묘지, 조각상을 파괴했어요. 이들은 또 종교와 무관하게 2세기에 지어진 개선문 유적까지 폭파하면서 큰 비난을 받았죠.
보스라 지역에 있는 로마 시대 야외 원형극장도 2011년 시작된 내전으로 훼손되다가, 2015년 전쟁 중 크게 파괴됐어요. 영국 옥스퍼드대 디지털 고고학 연구소와 유네스코는 손상된 유적지를 복원하기 위해 3D 지도를 만드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대요.
서아프리카 말리 공화국에 있는 도시인 팀북투는 14~16세기에 소금과 황금의 교역 중심지로 크게 발달했어요. 풍요롭고 자유로우며 황금보다 책이 귀하게 대접받았던 문화 도시로도 알려져 있어요. 진흙으로 지은 독특한 모양의 사원 등으로 도시 전체가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어요. 말리는 인구의 90%가 이슬람교도인데요. 2012년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인 안사르 딘이 팀북투를 장악한 뒤 이단 숭배를 이유로 이슬람 성인의 묘소와 사원 여러 곳을 의도적으로 파괴했어요. 이들은 이슬람의 수피파(성인의 무덤에서 예배하는 전통을 가진 이슬람교의 종파)가 이슬람 성인을 숭상하는 행위를 우상숭배이자 이단 행위로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2013년 팀북투의 수많은 고문서 역시 훼손될 위기에 처했지만, 도서관 사서들과 수집가들의 빠른 대처로 대부분 지켜질 수 있었대요.
반군이 침입하기 직전까지 밤마다 고문서를 몰래 상자에 넣어 들키지 않게 옮기는 첩보 작전 같은 일을 해냈다니 정말 놀랍지요.
[게르니카 훼손한 이란의 예술가]
단지 유명해지려고 예술품을 훼손하기도 합니다. 스페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그린 '게르니카'는 반전(反戰) 예술 작품으로 꼽힙니다. 이 작품은 스페인 내전이 벌어지던 1937년 4월 26일 나치가 게르니카를 폭격한 사건을 담은 그림이에요.
그런데 피카소가 세상을 떠나고 1년이 지난 1974년 이란 예술가였던 토니 샤프라지는 뉴욕 박물관에 걸려 있던 게르니카 그림에 빨간색 스프레이로 'Kill Lies All(모든 거짓말 죽이기)'이라는 낙서를 했어요. 작품에 큰 손상은 없었지만, 그는 재판에서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요. 이렇게 이목을 집중시킨 결과 그는 미국 현대미술에서 유명한 미술상(美術商)이 됐다고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