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라틴문학 시인 36명 詩 번역해 소개… 시공간을 뛰어넘는 문학적 감동 있어
작은 성냥갑
아돌포 코르도바 엮음 | 후안 팔로미노 그림
김현균 옮김 | 출판사 한솔수북 | 가격 1만4000원
이 책은 이베로아메리카(Ibero-America)에 속한 10국 36명의 시인이 쓴 작품을 엮은 시선집(시를 뽑아 엮은 책)이에요. 이베로아메리카는 스페인·포르투갈과 이 두 나라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을 일컬어요. 주로 라틴아메리카 대륙에 모여 있어요.
이 책에는 칠레의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스페인의 시인 후안 라몬 히메네스 같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비롯해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같은 20세기 스페인어권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도 포함돼 있어요. 그중 1920년에 발표된 시가 가장 오래 전의 작품이고, 2020년에 발표된 시가 가장 최근 작품이지요.
책에 실린 시들은 어린이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동시가 아니에요. 하지만 많은 시 중 어린이와 청소년이 읽어도 충분히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을 만한 아름다운 시만을 찾아내 엮었다고 해요. 책을 엮은 아돌포 코르도바는 멕시코의 아동문학 작가예요. 책에 그림을 그린 후안 팔로미노는 철학을 전공한 화가인데요. 그는 그림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시문학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지요.
책에 등장하는 시 하나를 소개할게요. "작은 성냥갑 속에는 / 별별 것을 다 보관할 수 있어. // 이를테면, 한 줄기 햇살. (중략) 눈송이 조금, / 어쩌면 달의 동전 한 개, / 바람의 옷에서 떨어진 단추, / 그리고 많은, 더 더 많은 것들. / 비밀 하나 말해줄게. / 난 작은 성냥갑 속에 / 눈물 한 방울을 보관하고 있어. / 다행히 아무도 보지 못해. (중략) 작은 성냥갑 속에는 / 별별 것을 다 보관할 수 있어. / 사물들은 엄마가 없잖아."
아르헨티나의 시인 마리아 엘레나 왈쉬가 1965년에 발표한 '작은 성냥갑 속에는'이라는 제목의 시예요. 지구 반대편에 사는 시인이 60여 년 전 쓴 작품이지만 쉽게 공감이 되지요. 어렵지도 않고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달하는 문학의 힘을 느낄 수 있어요.
우리나라 시인 김소월의 '진달래꽃'에는 이런 대목이 있어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이 대목을 영어로 번역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Even if I die, I'll never cry" 정도가 될 텐데, 그러면 이 문장을 읽는 영미권의 독자들은 "죽는다고 해도 절대로 울지 않을 거야"라고 해석하게 될 거예요. 뜻은 겨우 통할지 몰라도 시상(詩想·시에 나타난 사상이나 감정)까지 전달되기는 어렵지요. 그래서 시를 번역한다는 것은, 번역가가 그 시인의 시상을 가지고 한국어로 다시 시를 쓰는 일에 가깝다고 해요. 그러니 이 책을 읽을 때 번역 문체도 한번 눈여겨보세요. 번역을 한 김현균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는 마치 처음부터 우리말로 쓴 시처럼 느껴질 만큼 이 책을 자연스럽게 번역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