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가야금으로 국가 의례 위한 곡 만들어 국왕 권위 높였죠

입력 : 2022.11.03 03:30

고대의 악기
가야국 가실왕, 12줄 현악기 만들고
연맹체 통합하기 위한 노래 짓게 해
삼한에서는 방울 소리로 풍요 기원

기원전 3세기부터 사용한 각종 청동방울의 모습. 여덟 개의 방울이 달린 것은 팔주령(八珠鈴)으로, 중국·일본에서는 발견된 적 없는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어요. /부산시 복천박물관·국립중앙·경주·광주박물관
기원전 3세기부터 사용한 각종 청동방울의 모습. 여덟 개의 방울이 달린 것은 팔주령(八珠鈴)으로, 중국·일본에서는 발견된 적 없는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어요. /부산시 복천박물관·국립중앙·경주·광주박물관

부산시 복천박물관은 오는 30일까지 '신을 부르는 소리, 고대의 악기' 특별전을 열고 있어요. 옛날 사람들은 해마다 추수가 끝나는 10월이면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데, 북과 방울 같은 악기를 사용해 노래하고 춤을 췄다고 해요. 지금은 당시의 노래나 연주를 들을 수 없지만, 남겨진 유물을 통해 옛날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어요. 우리나라 고대사회에서는 어떤 악기들이 연주됐는지 좀 더 알아볼게요.

신을 부른다는 청동방울 소리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며 살던 선사시대 사람들은 풍요와 다산, 집단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신에게 제사를 지냈어요. 제사장들은 제사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신을 부르기 위해 다양한 악기를 사용했는데요. 한반도에서 확인된 가장 오래된 악기는 함경북도 선봉군 굴포리 유적에서 출토된 뼈피리예요.

이 뼈피리는 새와 같은 조류의 속이 빈 뼈를 가공해 만들었는데요. 표면에 13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요. 입으로 바람을 불면서 표면의 구멍들을 막거나 열며 소리를 냈을 것으로 생각돼요. 이런 피리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그림에서도 확인되는데요. 암각화에는 피리를 두 손으로 잡은 남성이 나체로 피리를 불고 있는 모습이 묘사돼 있어요. 그 주변에는 다양한 고래 그림이 함께 그려져 있어 고래 사냥을 하는 사람들이 제사를 지낼 때 사냥에 성공하고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며 사용한 악기로 추정됩니다.

청동기시대 유적에서는 방울류 악기가 자주 발견돼요. 그중 여덟 개의 방울이 달린 팔주령(八珠鈴)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는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어요. 팔주령은 팔각형으로 된 청동판 가장자리에 각각 한 개씩 둥근 방울이 달려 있는데요. 여덟 개의 방울 안에 각기 청동구슬을 넣어 흔들면 소리가 나도록 했어요. 뒷면에는 작은 고리가 있어 끈을 꿰어 손으로 잡아 흔들거나 옷에 부착해서 움직일 때 방울 소리가 나도록 했어요.

기다란 막대형 청동기의 양끝에 방울이 달린 쌍두령(雙頭鈴)이라는 악기도 있는데요. 막대 중간에 사각형 구멍이 뚫려 있어 여기에 나무를 끼워 사용한 것으로 생각돼요. 팔주령이나 쌍두령은 대부분 두 점이 한 쌍을 이루며 출토돼 한 쌍으로 구성된 악기라고 할 수 있어요.

삼한(三韓)에서는 농사를 시작하는 5월과 가을걷이를 하는 10월에 제사를 지냈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떼를 지어 모여서 노래와 춤을 즐기며 놀았다고 해요. 이때 사용한 악기나 음악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동탁(銅鐸)이라는 원뿔 모양의 방울을 흔들면서 춤을 췄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삼한에서는 제천 의례를 주관하던 제사장을 천군(天君)이라 불렀어요. 삼한에는 천신(하늘에 있다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신성 지역이 따로 있었는데요. 그곳에 커다란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귀신을 섬겼다고 해요. 이것을 보면 청동방울이나 북은 신을 부르는 악기라 할 수 있답니다.

국가를 통합하는 데 활용돼

삼한에서는 현악기도 만들어 사용했어요. 현악기는 줄을 손으로 퉁기거나 활대로 문질러 연주하는 악기를 말해요. 우리나라 전통 현악기로는 가야금과 거문고·아쟁·비파 등이 있는데요. 중국 역사서에는 "변한과 진한에 슬(瑟)이 있는데 그 모양이 중국의 축(筑)과 같고 연주하는 음악도 있다"고 기록돼 있어요.

광주 신창동과 창원 다호리, 경산 임당 유적 등에서는 현을 이용해 연주하는 '슬'로 추정되는 악기가 발견됐어요. 신창동 현악기는 78㎝ 크기의 나무판 테두리 부분을 U자형으로 남기고 내부를 파낸 모습인데요. 원래 형태를 복원해 보니 오늘날 가야금처럼 생겼고 10개의 줄을 매달았던 것이 밝혀졌어요. 중국의 현악기는 25줄을 기본으로 하지만 삼한의 현악기는 10줄로 변형된 거예요.

마한(신창동)과 진한(임당동), 변한(다호리) 세 지역에서 비슷한 모양의 현악기가 발견되는 것을 보면 삼한 사회는 동일한 악기를 바탕으로 비슷한 성격의 제사를 드렸음을 짐작할 수 있어요.

삼국시대에는 거문고나 가야금 같은 현악기가 연주됐어요. 거문고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악기인데요. 4세기 무렵, 고구려 왕산악(王山岳)이 중국 진나라 칠현금(일곱 줄로 된 현악기의 하나)을 개조해서 새로운 악기를 만들어 100여 곡을 연주했더니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춰서 현학금(玄鶴琴)이라 불렀고, 나중에 거문고로 불렀다는 기록이 있어요.

가야금은 가얏고라고도 불리는데, 좁고 긴 오동나무 판 위에 명주실로 꼰 12개의 줄을 걸어 만든 것이 특징이에요. 삼국사기에는 가야국의 가실왕(嘉悉王)이 12줄 현금을 만들었는데, 우륵(于勒)이 음악에 정통하다는 것을 듣고 12곡의 노래를 짓게 했대요. 가실왕은 여러 소국으로 이루어진 대가야 연맹체를 통합하기 위한 국가 의례를 거행하기 위해 우륵으로 하여금 음악을 만들게 한 거예요.

하지만 우륵은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551년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 진흥왕에게 투항했어요. 진흥왕은 그를 오늘날 충주 지역인 국원(國原)으로 이주해 살게 했는데요. 우륵은 신라 관료 3명에게 가야금과 노래, 춤을 가르쳤어요. 진흥왕도 가실왕처럼 국가적인 의례에 연주하는 음악 체계를 정비함으로써 국왕의 권위를 높이고 신라 통합의 상징으로 삼고자 했던 거예요. 고대사회에서 국가적인 의례에 사용되는 음악의 효용성을 잘 보여주고 있답니다.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만파식적]

신라에는 '만파식적(萬波息笛)'으로 불리는 나라의 보물이 있었다고 해요. 죽어서 동해의 용왕이 되었다는 문무왕과 천신이 되었다는 김유신이 함께 문무왕 뒤를 이어 즉위한 신문왕에게 대나무를 선물로 보내자 신문왕은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었대요. 이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병이 나으며, 가뭄에는 비가 오고 장마에는 날씨가 개며, 바람이 잦아지고 물결이 평온해졌대요. 이 만파식적은 유교의 예악(禮樂) 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요. 유교에서는 예절[禮]이 상하 귀천의 신분 질서를 정해주고, 음악[樂]은 임금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을 화합시킨다고 해서 중요시했어요. 음악이 조화와 화합은 물론 백성을 온순하게 교화하는 기능을 한다고 여겼던 거지요.

고구려 지안 지역의 무용총에 그려진 벽화. /부산시 복천박물관·국립중앙·경주·광주박물관
고구려 지안 지역의 무용총에 그려진 벽화. /부산시 복천박물관·국립중앙·경주·광주박물관
광주 신창동에서 발견된 현악기(왼쪽)와 이 악기를 복원한 모습. /부산시 복천박물관·국립중앙·경주·광주박물관
광주 신창동에서 발견된 현악기(왼쪽)와 이 악기를 복원한 모습. /부산시 복천박물관·국립중앙·경주·광주박물관
경주 계림로 신라 무덤에서 출토된 항아리. 현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의 토우(흙으로 만든 사람이나 동물의 상)가 달려 있어요. /부산시 복천박물관·국립중앙·경주·광주박물관
경주 계림로 신라 무덤에서 출토된 항아리. 현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의 토우(흙으로 만든 사람이나 동물의 상)가 달려 있어요. /부산시 복천박물관·국립중앙·경주·광주박물관
비파를 뜯는 인물 모양 토우. /부산시 복천박물관·국립중앙·경주·광주박물관
비파를 뜯는 인물 모양 토우. /부산시 복천박물관·국립중앙·경주·광주박물관
기획·구성=조유미 기자 이병호 공주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