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작은 새가 씨앗 퍼뜨려 알려준 행복… 한 땀 한 땀 자수 놓아 기록했어요
입력 : 2022.10.27 03:30
나의 작은 새
'자수'라는 오래된 미술 기법이 있어요. 헝겊이나 가죽 위에 실이나 끈을 바느질로 떠서 그림·글자·도안 등을 표현하는 일종의 장식예술이에요. 수(繡)라고도 하지요. 우리나라에선 옛 부여의 사람들이 특별한 날이면 자수를 놓은 의복을 입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그러니 아주 오래된 기법이네요.
이 책에 등장하는 그림들은 모두 자수로 되어 있어요. 작가가 실제로 천에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아 장면들을 표현하고,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책을 만들었어요. 사진이지만 오톨도톨한 자수의 입체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네요. 자수만이 표현할 수 있는 따뜻함과 부드러움이에요.
일상에 찾아온 작은 새 한 마리로부터 책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작가는 선물로 받은 화분을 무신경하게 마당 한쪽에 던져두었다고 해요. 돌보지 않은 화분은 곧 볼품없어졌지요.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어요. 마당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소리에 이끌려 창밖을 내다보니 작은 새 한 마리가 화분에 앉아있는 거예요. 이 새는 "이츄, 이츄" 마치 재채기 같은 소리를 내더니, 부리에서 씨를 뱉어내네요.
이날 이후 새는 종종 작가의 집에 찾아와 한참 머물다 갑니다. 작가는 새에게 관심을 두고 관찰하기 시작해요. 그러면서 마당 구석에 치워두었던 화분에도 애정을 갖기 시작하지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새가 보이지 않네요. 몇 번의 겨울이 오고 몇 차례의 봄이 돌아왔지만, 새를 다시 만날 수는 없었어요.
그런데 그 사이에 마을이 변해가고 있었어요. 처음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죠. 몇 번의 사계절이 지나는 동안 작은 새는 마을의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씨앗을 퍼뜨렸어요. 그 씨앗들이 자라나 어느덧 마을 전체를 온통 빨간 열매로 물들였던 거예요.
어쩌면 그 작은 새가 물고 와서 뱉어 놓았던 씨앗은 '행복'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네요. 행복도 그렇잖아요. 싹을 틔우고 자라는 것이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어느 날엔 꽃을 피우고 또 어느 날엔 열매를 맺어 문득 돌아보면 모든 곳을 아름답게 물들여 놓잖아요.
내가 마음을 두고 관심이 있다면 그 변화를 분명하게 볼 수도 있을 거예요. 작가는 작은 새의 안부를 궁금해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던 자신의 시선도 달라졌다는 것을 고백해요. 무심코 지나치던 풍경들이 모두 달라졌다는 거예요. 계절은 바뀌고 새는 어디론가 떠나갔지만, 자신은 어느새 세상을 찬찬히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됐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우리가 무언가에 아주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어 둔다는 것은, 넓은 세상으로 뛰어나올 수 있도록 만드는 시작점이라는 깨달음. 작가는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