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청개구리의 검은 피부가 방사선 막아 몸 보호해줬대요

입력 : 2022.10.25 03:30

멜라닌 색소
체르노빌 사고 원전 가까워질수록
검은빛 짙은 개구리 많이 발견돼
흑갈색 띤 색소가 세포 손상 막죠

/그래픽=진봉기
/그래픽=진봉기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 일어난 원전 폭발 사고로 이 지역 인근의 동식물은 대부분 방사선에 오염됐습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뒤, 체르노빌의 출입금지지역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청개구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그런데 이곳에서 발견된 청개구리는 이름처럼 초록색이 아니라 대부분 검은색이었어요.

청개구리의 몸이 검었던 이유는 피부에 멜라닌 색소가 많아서였다는데요. 이 멜라닌 색소가 방사능으로부터 청개구리의 몸을 보호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가 지난달 국제 학술지에 발표됐어요. 멜라닌 색소가 뭐기에 피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거고, 생물에 어떤 영향을 주는 걸까요?

체르노빌 방사선 흡수해 소멸시켜

스웨덴과 스페인 과학자로 구성된 연구자들은 2016년부터 3년 동안 체르노빌 원전 지역에 사는 청개구리를 조사했어요.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일어난 곳 인근에서 유독 검은빛을 띠는 청개구리가 많이 발견됐기 때문이에요. 그 결과 사고가 났을 때 방사능에 강하게 오염된 지역일수록 검은색이 짙은 청개구리가 많았어요.

개구리 등에게 나타난 검은색은 멜라닌 색소 때문이에요. 멜라닌 색소는 흑갈색을 띤 색소인데 자외선처럼 에너지가 강한 빛을 흡수해요. 따라서 자외선 등에 많이 노출되면 세포를 보호하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멜라닌 색소가 생성돼요. 사람도 자외선에 많이 노출되면 피부가 검게 변하는 거지요.

개구리 피부에 있는 멜라닌 색소는 방사선을 흡수해 소멸시키는 기능이 있었어요. 또 방사능에 노출돼 세포가 손상될 때 발생하는 유해한 분자들을 중성화하거나 흡수하기도 했고요. 방사선은 마치 날카로운 칼과 같아요. 그래서 DNA를 구성하는 분자의 결합을 단번에 끊어버려요. 그 결과 세포가 제대로 재생할 수 없게 돼 암에 걸리고, 이런 유전적 형질이 자손에게까지 전해져 돌연변이가 생기기도 해요. 피부에 있는 멜라닌 색소가 이처럼 유해한 고에너지 빛을 흡수해 개체가 암에 걸리거나 돌연변이 자손이 태어나는 것을 막아준 거예요.

과학자들은 사고가 난 원전 가까운 곳과 멀리 떨어진 곳 등 모두 8군데에서 총 200여 마리의 청개구리를 잡았는데요. 원전 사고 당시 방사능이 강했던 곳에는 검은빛이 짙은 개구리가 많았고, 방사능이 약한 곳일수록 검은빛이 진하지 않았대요. 방사능이 강한 곳일수록 멜라닌 색소가 많은 개구리가 살아남을 확률이 커요. 반면 몸을 보호해줄 멜라닌 색소를 가지지 않은 초록색 개구리는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방사능의 영향으로 죽었을 거예요. 그러니 살아남은 개구리로부터 태어난 다음 세대 개체들은 부모처럼 검은 등을 가진 경우가 많겠죠.

체르노빌 원전 근처에 사는 개구리들은 원전 사고 이후 약 10세대를 거쳐 살아왔어요. 세대가 거듭되는 동안 방사능이 강한 곳일수록 검은빛이 짙은 개구리만 살아남는 적응이 이루어진 셈이에요. 이 내용은 국제 학술지인 '진화 응용'(Evolutionary Applications) 9월호에 발표됐어요.

태양에서 날아오는 우주선 차단

멜라닌 색소 덕분에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서 살아남은 개체가 또 있어요. 바로 검은 곰팡이인데요. 1991년 과학자들은 사고로 부서진 원자로 벽에서 검은 곰팡이(클라도스포리움 스패로스페르뭄)를 발견했어요. 수많은 곰팡이 중 검은색을 띠는 곰팡이만 강한 방사선을 이기고 살아남은 거지요. 이 곰팡이 역시 검은색을 내는 멜라닌 색소가 방사선을 흡수한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요.

과학자들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 지역에서 살아남은 곰팡이라면 방사선이 강한 우주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추측했어요. 지구 대기와 자기장을 벗어나면 우주선(宇宙線)이 우주인의 생명을 위협하는데요. 우주선이란 태양에서 날아오는 자외선·엑스선·감마선 같은 강한 빛을 이르는 말이에요. 우주정거장이나 달·화성 등 지구를 벗어난 곳에서 지구 생물이 살아가려면 우주선을 잘 막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해요. 검은 곰팡이를 이용해 우주에서 방사선을 피할 방법을 찾으려 했던 거지요.

과학자들은 체르노빌 원자로 벽에 있던 검은 곰팡이를 채취해 배양 접시에 2㎜ 두께로 배양했고, 이를 국제우주정거장에 보냈어요. 그리고 한 달 동안 우주선을 쪼였어요. 그 결과 배양된 검은 곰팡이는 우주선을 약 2% 흡수했다고 해요. 연구진은 만약 곰팡이를 21㎝ 두께로 배양한다면, 우주선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다고 논문에 밝히기도 했어요. 만약 검은 곰팡이 등에서 멜라닌 색소만을 추출해 낼 수 있다면, 그 색소를 건축 자재나 옷감에 섞어 우주에서 활용할 수 있을 거예요. 과학자들은 그 방법을 연구하고 있지요.

생물 활동에 다양하게 관여해

멜라닌 색소는 생물의 생존에 다양한 방법으로 관여해요. 예컨대 산업 지역에서 짙은 색의 형태를 띤 생물이 늘어나는 현상을 '공업 암화(暗化)'라고 하는데요. 이 현상 역시 멜라닌 색소와 연관이 있어요.

공업 암화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는 회색가지나방이에요. 영국에 사는 회색가지나방은 원래 옅은 회색 날개에 조금 짙은 색의 반점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하얀 이끼가 자라는 나무에 있으면 눈에 잘 띄지 않아요. 그런데 19세기 영국의 공장 지대에서 매연과 오염이 극심해지면서 나무껍질에서 자라던 이끼가 죽고 나무는 검댕이 묻어 검게 변했어요. 그러자 검은 나무에 앉은 회색가지나방은 포식자인 새의 눈에 띄어 쉽게 잡아 먹혔어요. 반면 멜라닌 색소를 많이 가지고 있어 날개가 검은색이었던 돌연변이 나방은 새의 눈에 띄지 않아 살아남았지요.

흥미로운 점은 매연과 공기 오염이 줄어들자 이끼가 다시 살아났고, 덩달아 밝은색 회색가지나방의 수가 다시 더욱 늘었다는 점이에요. 이제는 검은 나방이 도리어 눈에 잘 띄기 때문이죠. 결국 생물의 활동이 멜라닌 색소의 변화에 따라 조절되고 있었던 셈이죠.
이지유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조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