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현대 건축의 거장 김수근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건축·예술 잡지

입력 : 2022.10.25 03:30

잡지 '공간'

잡지 공간의 1호인 1966년 11월호. /공간
잡지 공간의 1호인 1966년 11월호. /공간
최근 우리나라 최초의 건축예술 잡지인 잡지 '공간'(SPACE)의 역대 편집부가 한국건축가협회가 주는 2022년 건축상 특별상(김정철건축문화상)을 받았어요. 이 상은 건축과 관련된 분야에서 건축문화의 발전과 성숙 등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되는데요. 1966년 11월 창간된 공간은 건축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예술의 확산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는 잡지랍니다.

잡지 공간은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이 창간했어요. 그는 건축가 김중업(1922~1988)과 더불어 우리나라 현대 건축을 개척한 대표적인 건축가이자, 20세기 한국 건축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건축가로 평가받아요. 우리나라 최고의 건축물을 꼽을 때 거론되는 옛 공간 사옥(1971)을 비롯해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 세운상가(1968), 서울올림픽주경기장(1977), 경동교회(1980), 서울지방중앙법원(1986) 등 여러 작업물을 남겼지요.

그는 일본 도쿄대에 재학 중이던 1959년 남산에 짓는 국회의사당 설계 공모에 당선되며 귀국을 결심했는데요. 이 계획은 백지화됐지만, 그의 재능을 높이 산 박정희 정권과 협업하면서 이후 경부고속도로 기본계획, 포항제철 입지 선정, 목동 신시가지 개발계획 등 대형 국토개발 계획을 도맡기도 했어요.

처음 공간이 만들어지던 당시에는 '건축가'라는 말 자체도 생소했다고 해요. 하지만 김수근은 이렇게 말하며 공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한국에도 '건축'이 있었다는 걸 후세에 기록한다. 사람에게 인권이 있듯 건축물에도 건축가의 생명과 철학이 있다는 걸 알린다." 잡지 공간은 적자를 내기가 일쑤였어요. 하지만 그는 "등사판(간단한 인쇄기)을 손수 긁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 내겠다"는 열정을 보이며 잡지를 꾸준히 발행했습니다.

창간 초기에 공간은 건축뿐 아니라 미술·음악·무용·연극·전통문화 등 다양한 예술을 다루며 여러 예술가를 알리는 데에 힘썼어요. 비디오 작가인 백남준(1932~2006)을 1968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하고, 한국 전통 춤의 대가라고 불리는 한국무용가 공옥진(1931~2012)의 '병신춤', 사물놀이 명인인 김덕수(70) 패의 '사물놀이'를 발굴해 세상에 소개했지요. 1986년 건축가 김수근이 세상을 떠난 이후, 공간은 1997년부터 건축 전문 잡지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2010년대 들어 수많은 종이 잡지가 사라졌는데요. 2009년 7월 호를 기점으로 500호를 기록한 공간 또한 이 시기 재정난으로 발행처가 바뀌었습니다. 그럼에도 2016년 창간 50주년을 맞았고, 지난 10월 호를 기준으로 659호를 기록하며 꾸준히 맥을 이어가고 있답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