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난해한 곡" 비판 이겨내고… 예순 이르러 인정받았죠
입력 : 2022.10.17 03:30
안톤 브루크너
- ▲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는 지난 14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안톤 브루크너(1824~1896)의 교향곡 7번을 연주했어요. 사진은 지난 13일 LG아트센터서울에서 열린 개관 기념 공연에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래틀의 모습. /LG아트센터서울
브루크너는 바그너, 브람스, 차이콥스키 등과 함께 대표적인 후기 낭만파 작곡가로 꼽힙니다. 장대한 음향(音響)과 독창적 구성이 특징이지요. 하지만 당대에는 대중이 그의 음악이 어렵다는 이유로 알아주지 않아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고 해요.
미사곡과 합창곡 많이 만들어
브루크너는 1824년 오스트리아 린츠 근교 마을 안스펠덴에서 11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생애 첫 음악 선생님은 아버지였고, 13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성 플로리안 성당 성가대로 들어가 오르간 주자로 활동했죠. 저명한 음악 이론가였던 지몬 제히터에게 배운 브루크너는 스승이 세상을 떠난 뒤 빈 음악원에서 음악 이론 교사 자리를 맡아 제히터의 뒤를 이었어요. 1875년에는 빈 대학에서 화성학(화음에 기초를 두고 구성 등을 연구하는 분야)과 대위법(둘 이상의 독립된 선율 등을 결합시켜 곡을 만드는 작곡법)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어 제자들을 길러냈고, 작품 활동도 같이 했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앙을 가진 그는 미사곡이나 합창곡 등을 많이 만들었는데요. 그중에서도 대표작은 미완성으로 남은 교향곡 9번을 포함한 총 11곡의 교향곡입니다. 교향곡에 붙인 번호상으로는 9번이 마지막이지만, 습작으로 쓴 '0번'과 '00번' 작품이 남아있어 모두 11곡을 남긴 것으로 봅니다. 최초 교향곡은 1863년에 썼지만, 청중에게 인정받은 건 교향곡 7번이 발표된 1884년, 60세에 이르러서이니 작곡가로서는 꽤 늦은 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그는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예술 세계에 심취해 영향을 받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1873년 만든 교향곡 3번은 바그너에게 바치기 위해 만들었다고도 하지요. 교향곡 제7번의 제2악장을 쓰던 중 바그너의 죽음을 예감하고 장송곡풍의 악상을 삽입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복잡하고 난해한 탓에 비판도 받아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늦게 인정받은 이유는 무엇보다 그의 교향곡이 무척 길고 듣기에 까다로웠다는 평가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평단과 청중, 제자들에 이르기까지 브루크너 작품에 등장하는 복잡한 대위법과 난해하고 파격적인 화성 진행과 구성, 지나치게 긴 작품 연주 시간 등에 대해 부정적이었는데요. 여기에 성격이 소심했던 그는 작품이 비난받을 때마다 개작을 반복했고, 그 결과 그의 교향곡은 작품 번호는 같은데 서로 다른 악보 버전이 여러 개가 남는 혼선을 빚었습니다. 브루크너의 제자인 페르디난트 뢰베와 프란츠 샬크 등은 스승의 교향곡을 지휘해 초연하기도 했는데요. 이들은 청중이 어렵고 지루해한다는 이유로 작품을 스승 허락 없이 고친 일도 있었다고 해요.
이런 어수선한 과정은 20세기 초·중반 활동했던 음악학자 로베르트 하스와 레오폴트 노바크가 정리했습니다. 오스트리아 국립 도서관에서 음악감독을 지내기도 했던 이들은 1929년 빈에서 만들어진 국제 브루크너 협회에서 편집을 맡아 어지럽게 남아있는 브루크너 교향곡 악보를 정리해 출판했습니다.
신에 대한 경건함과 감사 들어있어
브루크너는 수줍음을 많이 타고 사교적이지 못했으며, 빈에서 오래 살았는데도 시골 사람 생활 습관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고 해요. 연애에도 서툴러 평생 독신으로 살았죠. 신앙심이 깊어 대학에서 수업을 하다가도 성당 종소리가 들리면 기도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자신이 만든 음악이 신을 향해 하늘로 올라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르간 연주자로도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그의 교향곡에서는 오르간의 울림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이 들어있죠.
브루크너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우주적이라고 할 만한 거대한 스케일의 오케스트라 음향과 주제(theme·작품 기초를 이루는 짧은 선율 토막)의 자유롭고 환상적인 사용법입니다. 길고 느린 호흡으로 진행되는 부분이 많기에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요. 독특한 흐름과 분위기에 젖어들다 보면 브루크너의 교향곡만이 주는 매력에 빠지게 되죠.
브루크너 교향곡에서는 아주 작은 음량부터 폭발하는 듯한 큰 소리까지 다양하게 들을 수 있어요. 그래서 오디오 마니아에게 특별히 사랑받기도 합니다. 그의 작품 중 잘 알려진 곡으로는 '로맨틱'이라는 부제가 붙은 교향곡 4번, 만년의 원숙함이 작품 구석구석에 잘 살아있는 교향곡 7번과 8번 등을 들 수 있어요. 교향곡 7번은 우리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합창의 순수한 아름다움이 살아있는 미사곡과 오르간 작품들도 브루크너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 ▲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