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식민지 개척 유럽인에게 공포의 전염병… 세종의 어머니와 형도 걸렸대요

입력 : 2022.10.11 03:30 | 수정 : 2022.10.11 09:48

말라리아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아노펠레스 알비마누스(Anopheles albimanus) 모기. /위키피디아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아노펠레스 알비마누스(Anopheles albimanus) 모기. /위키피디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1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말라리아·결핵 등 감염병 퇴치 기금 마련을 위한 글로벌 펀드 회의에 참석했어요. 말라리아는 모기가 옮기는 전염병 중 하나로, 말라리아 기생충이 인간의 적혈구를 파괴하면서 오한과 발열을 동반하는 질병인데요.

말라리아에 대한 유럽 사회의 기록은 고대 오리엔트 문명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지중해 문명에서 주로 발견됩니다. 고대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년쯤~기원전 370년쯤)의 저술에서도 관련 내용이 확인되지요.

말라리아(Malaria)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곳도 지중해 지역의 고대 로마였는데요. 당시 사람들은 말라리아를 모기가 옮기는 전염병이 아니라 나쁜 공기에 의해 생기는 병이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그래서 라틴어 'malus(나쁜)'와 'aria(공기)'를 합쳐 말라리아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16세기 이후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하고 식민지 개척을 하려는 유럽인에게 말라리아는 특히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때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선교 활동을 벌이던 수도회인 예수회는 페루 지역의 원주민을 통해 말라리아에 효과가 있는 치료법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키나'라고 하는 나무를 갈아 물에 타 마시는 방법이었어요.

이후 1820년에 프랑스의 약사인 피에르 조제프 펠레티에(1788~1842)가 키나 나무에서 말라리아 치료에 효과적인 성분만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고, 이 성분으로 말라리아 치료제가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이 치료제 개발은 아프리카 원주민에게 재앙이 됐는데요. 유럽인이 그간 아프리카 내륙으로 쉽게 들어가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에 취약했기 때문인데, 치료제 개발로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 내륙의 식민 지배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라리아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은 '고려사' 의종 6년(1152)의 기록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의종은 기근과 역병에 시달리는 백성을 구휼(재난을 당한 사람이나 빈민을 구제함)하고, 제사를 지내 역병을 물리쳐달라고 기도했는데요. 오늘날에는 여러 기록 등을 토대로 이 역병의 정체를 말라리아로 추측하고 있어요.

조선시대 세종 때에는 왕실에서도 말라리아 환자가 나왔는데요. 세종의 어머니였던 원경왕후 민씨가 학질(과거 말라리아 등 오한과 발열을 일으키는 전염병을 일컫던 단어)에 걸려 죽었다는 기록과 세종의 형인 양녕대군 또한 학질에 걸렸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습니다.
김현철 서울 영동고 역사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