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무대 위 배우 옆에서 手語 통역사가 함께 연기해요

입력 : 2022.10.03 03:30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공연

①지난달 15일부터 18일까지 국립극장 무대에 올려진 음악극 ‘합체’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무장애)’공연입니다. 1명의 통역사가 무대 구석에서 통역을 하는 것이 아닌, 여러 명의 통역사가 각 배우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표정이나 동작까지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하나의 배역에 배우와 수어통역사 2인이 연기를 하는 셈이에요. ②무대 오른쪽에 한글 자막이 띄워져 있는 모습. ③음악극 ‘합체’의 공연 포스터. /국립극단
①지난달 15일부터 18일까지 국립극장 무대에 올려진 음악극 ‘합체’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무장애)’공연입니다. 1명의 통역사가 무대 구석에서 통역을 하는 것이 아닌, 여러 명의 통역사가 각 배우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표정이나 동작까지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하나의 배역에 배우와 수어통역사 2인이 연기를 하는 셈이에요. ②무대 오른쪽에 한글 자막이 띄워져 있는 모습. ③음악극 ‘합체’의 공연 포스터. /국립극단
휠체어가 하나둘 극장으로 들어옵니다. '하우스 어셔(house usher·관객 입장부터 착석까지 안내 모든 과정을 담당하는 직원)'가 휠체어를 탄 이들을 휠체어석으로 안내하네요. 공연장이나 영화관에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좌석이 있어요. 하지만 주인 없이 비워져 있을 때가 많죠.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집 밖을 나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수많은 장벽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잘 안 나가려 해요. 또 어렵게 도착한 공연장이나 영화관에서는 그들이 작품을 감상하기 편하게 배려한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죠.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놓인 장벽(barrier)을 뛰어넘는 다양한 시도가 나타났고, 공연계도 적극 동참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답니다. 이른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무장애)' 공연이 등장하기 시작한 거죠. '장벽(barrier)'과 '자유(free)'의 합성어로 '장벽에서 자유롭게 하자'는 의미예요.

지난달 15일부터 18일까지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 음악극 '합체'도 그중 하나랍니다. 과연 '합체'처럼 우리나라에 과거 배리어 프리 공연이 얼마나 있었는지, 또 전 세계적으로 장애인을 위해 어떤 공연 서비스와 시설을 제공했는지 살펴볼게요.

'그림자 통역' 붙인 음악극

공연계 배리어 프리는 시청각 장애를 가진 이를 위해 수화나 음성 통역, 그리고 모니터나 스크린으로 대사나 효과음을 자막 처리해 서비스하는 방식이 도입되며 시작됐습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배리어 프리 공연으로는 극단 학전의 어린이 뮤지컬 '슈퍼맨처럼'이 있습니다. 이 뮤지컬은 2008년 처음 무대에 올랐는데, 2013년 일회성으로 수어(手語) 통역을 선보였다가 2020년부터는 공연 기간 격주 일요일마다 배리어 프리 공연을 정기화했어요.

뮤지컬 '슈퍼맨처럼' 주인공인 초등학교 5학년 정호 역시 장애를 가지고 있어요.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지만, 늘 밝고 씩씩해요. 정호는 장애를 문제 삼아 입학을 반대하는 학교의 부당한 결정에 맞서 싸우죠. 이런 공연 내용을 전달하려 수어 통역사가 무대 2층 구석에서 배우들이 주고받는 대사를 실시간으로 통역해주는 또 한 명의 주인공으로 등장해요. 하지만 통역사 위치가 시야에서 벗어나는 곳에 있어 공연을 보는 데 시선이 분산된다는 단점이 있었지요.

이런 단점을 보완한 공연이 '합체'입니다. 박지리 작가가 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요. 이 공연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자막과 수어 통역,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해설을 다소 색다른 방식으로 연출합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배우들 대사는 물론 현재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극 중 배역인 라디오 DJ '지니'를 통해 음성 해설 형식으로 전달됩니다. 그리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은 통역사 1명이 무대 구석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 한 명에 수어 통역 배우 한 명을 더했어요. 하나의 배역에 배우와 수어통역사 2인이 연기를 하는 셈이에요. 수어 통역 전문 자격증을 겸비한 통역사들이 배우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표정이나 동작까지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이를 '그림자 통역(Shadow Interpreting)'이라고도 불러요.

저신장 장애(성장 장애)를 가진 아버지와 비장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 '오합'과 '오체'는 쌍둥이 형제예요. 두 사람 이름을 합하면 '합체'가 돼요. 체는 키가 작은 것이 고민입니다. 어느 날 체는 뒷산에서 만난 노인의 말을 듣고 키가 커지는 비밀 수련을 하기 위해 한 달간 계룡산으로 합과 함께 비밀 특훈을 떠나요. 형제는 이 특훈을 거쳐 키가 아닌 마음이 성장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좋은 공은 다시 튀어오르지"라는 말처럼 시련 속에서도 다시 힘껏 뛰어오를 수 있는 힘을 갖게 돼요.

이 공연이 특별한 이유가 또 있어요. 공연에 등장하는 합체의 아버지 역할은 저신장 배우가 맡았는데요. 장애인의 '당사자성(당사자가 주 목소리를 내는 것)'을 강조한 거예요.

세계 곳곳 배리어 프리 서비스

세계 곳곳에는 배리어 프리를 위한 다양한 공연 서비스와 시설이 있어요. 미국에는 메트로폴리탄 워싱턴 이어(Metropolitan Washington Ear)라는 봉사 단체가 있는데요. 워싱턴 지역 시각장애인에게 연극과 뮤지컬 공연 해설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요. 뮤지컬 '온 더 타운' '카멜롯' 등 해설 서비스를 제공했죠.

아르헨티나에 있는 '티에트로 시에고(Teatro Ciego)'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극장이에요. 이곳에서는 장애인·비장애인 할 것 없이 누구나 완벽한 어둠 속에서 공연을 보게 되죠. 공연을 감상할 때 시각이라는 요소가 필요 없는 거예요. 여기서는 모든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해 음악에 집중하도록, 또는 후각과 촉각에 집중하도록 공연을 기획한다고 해요.

영국의 음성해설협회(Audio Description Associates)는 연극·오페라·춤·서커스·스포츠·영화까지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음성 해설로 전달합니다. 배우들 의상과 무대 장치, 극장의 분위기까지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설명하는 게 특징이죠.

여러분은 혹시 공연장이나 영화관의 휠체어석 위치를 보고 의문이 생긴 적은 없나요? 보통 휠체어석은 공연장 맨 뒷자리에, 영화관에서는 맨 앞자리에 마련되어 있어요. 관람하기 매우 불편한 좌석이죠. 이뿐만 아니라, 좌석을 선택할 자유마저 뺏기고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어요. 여전히 많은 장벽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가르며 놓여져 있지만, 모두 함께 의식하고 개선해 진정한 '배리어 프리'가 되도록 동참해보면 어때요.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기획·구성=조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