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달맞이꽃은 벌 날갯짓 소리 나면 꿀 더 많이 분비한대요

입력 : 2022.09.27 03:30

식물의 놀라운 능력

/그래픽=진봉기
/그래픽=진봉기
최근 식물이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더 정교하고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어요. 식물이 다른 식물과 소통하거나,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아직 밝혀진 것이 많지는 않지만, 몇 가지 흥미로운 연구 결과에 대해 알아볼게요.

식물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까

생물이 지능을 가지려면 외부 자극을 감지하는 감각기관과 그로부터 얻은 정보를 처리하는 뇌가 있어야 해요. 영국 버밍엄 대학의 연구팀은 식물에 뇌의 역할을 하는 특정 부위가 있어 싹을 틔울지 휴면 상태에 들어갈지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한다는 내용의 논문을 2017년 국제학술지 생태학 저널에 실었는데요.

이 연구에 따르면, 애기장대 씨앗에 있는 배아의 끝에서는 두 가지 호르몬이 나온다고 해요. 둘 중 어느 호르몬이 나오느냐에 따라 싹이 트기도 하고 휴면에 들어가기도 하지요. 씨앗 속의 세포들이 외부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싹틔우는 시기를 스스로 결정해요. 연구팀은 이를 두고 씨앗에 정보 처리 능력이 있으며 그 결과에 따라 스스로 선택과 결정을 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고 봤어요. 식물의 특정 기관이 동물의 뇌가 하는 일을 한다는 거죠.

토마토와 달맞이꽃의 능력

식물의 놀라운 생태는 속속 드러나고 있어요. 식물은 땅 위나 아래에서 서로 소통을 하고, 다른 종과도 상호작용할 수 있다고 해요. 예를 들어 식물은 애벌레가 자신의 잎을 뜯어먹는다는 사실을 감지하면 다른 잎에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화학물질(메틸자스모네이트·MeJa)을 방출해요. 이렇게 정보를 전달하는 화학물질을 '화학 언어(chemical word)'라고 하는데요.

미국 위스콘신대 존 오록 박사 연구팀은 나방 애벌레들이 토마토가 분비하는 이 화학물질에 노출되면 애벌레들끼리 서로 잡아먹기 시작했다고 국제 학술지 '네이처 생태와 진화'에 2017년 7월 발표했어요. 토마토가 이 화학물질을 통해 잎에 앉은 애벌레가 서로를 잡아먹도록 유도한다는 거예요.

달맞이꽃이 특정한 곤충이 내는 주파수를 감지하고 꿀을 더 많이 분비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식물학자인 릴라크 하다니 등 연구팀은 달맞이꽃에 벌이 붕붕거리며 나는 날갯짓 소리를 들려주자 3분 안에 꿀물의 당분 농도가 20%까지 높아지는 현상을 2019년 발견했어요. 그런데 벌이 나는 소리와 같은 주파수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들려줬을 때에도 꿀물의 당분 농도는 높아졌어요. 소리는 공기를 타고 전파되는 진동이고 진동을 감지하는 기관이 동물의 귀예요. 연구 결과, 달맞이꽃은 꽃잎으로 진동을 감지했어요. 즉, 꽃잎이 귀의 역할을 하는 셈이지요.

미모사 기억 능력 실험

그간 식물에 기억력이 있다는 주장은 계속 있었어요. 그 대표적인 식물이 미모사예요. 호주의 과학자들은 2013년 미모사를 가지고 실험을 했어요. 미모사는 건드리면 잎이 오므라드는데, 그동안 미모사 잎이 오므라드는 것은 무조건 일어나는 기계적인 반사작용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만은 없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어요. 과학자들은 미모사 화분을 10㎝ 높이에서 수차례 떨어뜨렸어요. 바닥에는 푹신한 방석을 놓았지요. 이런 사실을 모르는 미모사는 처음엔 잎을 닫았어요. 그런데 8회 정도 반복해서 떨어뜨리자 미모사는 더 이상 잎을 닫지 않았어요.

다음으로 과학자들은 추락이 아닌 가로로 흔드는 장치에 미모사 화분을 놓고 자극을 줬어요. 그런데 가로로 흔드는 실험에서 미모사는 잎을 닫았어요. 그러니까 앞서 추락 때 잎을 닫지 않았던 것은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과학자들은 미모사의 기억 능력도 실험했어요. 추락과 가로로 흔들리는 상황을 모두 겪은 미모사 몇 개를 며칠간 가만히 두었다 다시 떨어뜨리거나 흔들어 본 거예요. 미모사는 40일쯤 뒤에도 추락 상황에 대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어요. 이 실험을 한 과학자는 미모사가 이 상황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잎을 접지 않았고, 이는 미모사의 기억 능력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고 했어요.

식물의 기억력을 얘기할 때 미모사와 함께 등장하는 게 파리지옥이에요. 파리지옥은 말 그대로 파리 같은 곤충을 잡아먹는 식충(食蟲) 식물인데요, 파리지옥의 잎에 난 돌기를 곤충이 건드리면 마치 덫이 작동하는 것처럼 잎이 저절로 닫혀요.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한 번만 돌기를 건드리면 안 되고 20~30초 안에 한 번 더 건드려야 잎을 닫아요. 여기엔 이유가 있어요. 잎을 닫으려면 에너지가 많이 드는데, 곤충이 처음 건드린 다음에 그냥 지나가버렸을 수도 있으니 곤충이 한 번 건드렸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가 두 번째로 건드릴 때 비로소 행동에 옮겨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한다는 것이죠.

미세한 부분에 대한 증거 부족해

일부 과학자는 이런 식물의 능력을 지능과 연결하려고 해요. 왜냐하면 이런 행동은 식물이 상황에 따라 유연하고 역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에요. 이건 동물이 가지고 있는 행동의 특징과 일치하지요.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런 식물의 반응이 단순 반복 행동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과학자가 더 많아요. 식물이 진화하면서 특정 상황에 대해 고정된 반응을 보이게 됐다는 거지요. 또 식물에 설령 뇌와 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이 있다고 하더라도, 뇌 기능이 작동하기 위한 복잡하고 미세한 구조적·기능적 부분에 대한 증거가 현저하게 부족하다는 것이 보편적인 의견이랍니다.
기획·구성=조유미 기자 이지유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