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경제 위기 때 집권… 감세 등 자유주의 정책 앞세우죠
입력 : 2022.09.14 03:30
대처와 트러스
최근 선출된 英 신임 총리 트러스
전형적인 보수 우파 정책 내세우며
첫 女총리 '철의 여인' 대처와 비슷해
- ▲ 영국의 첫 여성 총리인 마거릿 대처가 1979년 미국의 대통령 지미 카터(왼쪽)를 만난 모습. /위키피디아
오늘날 영국은 높은 물가 상승률과 함께 국내총생산(GDP)이 감소하는 등 1979년 대처 전 총리가 취임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어요. 대처의 삶과 정책을 살펴보면, 앞으로 트러스 총리가 영국이 직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추측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대처 전 총리와 함께 트러스 총리에 대해 알아볼게요.
한때 진보적 활동을 한 트러스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1925년 영국 중부의 그랜덤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대처 전 총리의 아버지는 식료품점 주인이었지만, 정치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의 유년 시절 동안 아버지는 그랜덤의 시의원과 시장에 취임하는 등 적극적인 정치 활동을 했고, 아버지의 이런 행보는 대처 전 총리에게 큰 영향을 미쳤죠.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정치 문제에 대해 분석하고 토론하며 아버지의 선거운동을 도왔다고 해요.
대처 전 총리는 옥스퍼드대에서 대학 내 보수협회 회장직을 지냈어요. 졸업 후 변호사가 된 뒤에도 보수당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했고 1959년 보수당의 국회의원이 됐죠. 이후 꾸준히 주택장관·재무장관·교육장관 등 장관급 고위 직책을 맡았습니다.
1974년 보수당이 정권을 노동당에 넘겨주고 야당이 된 후 이듬해 대처 전 총리는 보수당의 당수가 됩니다. 그리고 경제 침체와 노동자들의 총파업으로 영국에 '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이 닥친 1979년 노동당을 밀어내고 정권 교체를 이뤄냅니다. 의원내각제인 영국은 다수당 당수가 총리가 돼요. 그가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거예요. 그는 친기업·반(反)노조의 입장에서 경제 개혁을 실시했고, 1983년과 1987년 총선에서도 승리했어요. 그러다 다시 영국의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물가 상승률이 올라가자 1990년 사임합니다.
트러스 총리는 어떨까요. 그는 지금 여러모로 대처 전 총리를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한때 진보적 활동을 했어요. 그는 어린 시절 스코틀랜드에서 "대처 퇴진"을 외치며 대처 전 총리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요. 광산업·철강업을 주요 산업으로 하는 스코틀랜드에는 노동자가 많았어요. 그래서 당시 대처 전 총리의 반노조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는 분위기였죠. 트러스의 부모님도 보수당이 아닌 노동당 지지자였고요.
또 트러스 총리는 옥스퍼드대 재학 시절 보수당·노동당과 함께 영국의 3대 정당으로 꼽히는 자유민주당에서 활동했어요. 그가 대마초(마리화나) 합법화와 왕실 폐지론을 주장했다는 사실은 유명하지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트러스 총리는 졸업 직후인 1996년 보수당으로 돌아섰어요. 훗날 인터뷰에서 그는 좌파 활동을 했던 시절을 두고 "철없는 시절의 실수"로 묘사하기도 했어요. 2010년 트러스는 사우스 웨스트 노퍽 지역 보수당의 하원의원으로 당선됐고, 이후 교육부 장관, 환경부 장관 등을 지냈어요. 그리고 감세 정책 등을 앞세우며 당수로 선출돼 영국의 세 번째 여성 총리가 됐습니다.
1970년대 모습과 판박이인 영국
1970년대 말 영국의 실업률은 심각한 수준이었어요. 복잡한 정부 규제와 높은 세금으로 경제활동은 침체돼 있었고, 노동자들의 잦은 파업 등으로 노동 생산성은 저하됐어요.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정부의 재정 지출을 늘렸는데요. 과도한 복지 정책과 국유화 등이 효율성의 저하를 낳았어요. 대처 전 총리는 당시 위기를 이른바 '영국병(British Disease)'이라고 불렀습니다.
대처 전 총리는 1979년 총선에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감세 정책, 민영화 확대와 복지 정책의 축소를 내세운 강력한 경제 개혁을 주장했어요. 이런 그의 경제 정책을 '대처리즘(Thatcherism)'이라고 부릅니다. 총리가 된 후에는 통신 업체 '브리티시 텔레콤(British Telecom)'과 에너지 업체 '브리티시 가스(British Gas)' 등의 국유 산업을 민영화했어요. 또 주택 구입 보조비를 없애고 교육 투자 예산을 대폭 줄였지요. 노조 활동을 규제하는 법도 제정합니다.
트러스 총리 역시 대처 전 총리와 유사하게 감세와 기업 경쟁력 강화 등 전형적인 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추구합니다. 이번 당대표 경선에서 감세 정책을 대표적인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죠.
하지만 트러스 총리는 취임 연설에서 1500억파운드(약 238조원) 이상의 에너지 비용 지원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는데요. 이는 정부의 개입으로 급한 불부터 끄겠다는 의도로 보여요. 현재 영국의 물가 상승률은 40년 만에 최고를 기록하고 있거든요. 우크라이나 전쟁발 에너지 위기가 물가 상승에 큰 영향을 주고 있어요. 영국 표준가구의 가정용 전기·가스 요금은 10월부터 기존보다 약 80% 뛸 예정이라고 해요. 그는 우선 이 문제를 해결한 뒤 기업 감세 등을 내세운 개혁에 착수할 것으로 보입니다.
영국 내에서도 평가 엇갈려
영국 내에서 대처 전 총리에 대한 평가는 갈립니다. 그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추진력으로 '철의 여인(The Iron Lady)'이라고 불렸는데요. 강경한 반공주의자였던 대처 전 총리가 1976년 공산주의를 비난하는 연설을 한 후 소련 언론이 붙인 별명이었어요. 복지 예산을 축소하고 감세 정책을 펼치는 대처 전 총리의 자유주의 정책은 빈부 격차를 심화시킬 수밖에 없었어요. 교육부 장관이던 1971년 그가 무상 우유 급식을 유상으로 바꿨을 때는 '우유 도둑'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칭호를 얻기도 했지요.
트러스 총리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는데요. 그는 좌파였다가 우파로 전향한 것뿐 아니라 종종 정책 기조도 바꿔 비판받기도 합니다. 2016년에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인 '브렉시트(Brexit)'에 반대하다가 이후 찬성 측으로 입장을 바꿨어요. 이에 워싱턴포스트(WP)는 "일각에선 그를 출세를 향해 움직이는 '풍향계'라고 비판한다"고 보도하기도 했죠. 또 트러스 총리가 내세우는 감세 정책은 반대파로부터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국채가 늘어날 것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 ▲ 대처 전 총리가 집권하던 시절인 1984년 영국 런던에서 일어난 광부 파업 집회. /위키피디아
- ▲ 지난 5일(현지 시각) 영국의 새 총리로 선출된 리즈 트러스. 영국 역사상 세 번째 여성 총리예요. 자유주의 보수 우파 정책을 내세우며 ‘리틀 대처’라고 불리기도 해요. /위키피디아